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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미선 기자스케치] 별을 노래하는 사람
 
함양신문 기사입력  2021/10/18 [09:53] ⓒ 함양신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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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사의 농(農)자는 별 신(辰)자에 노래 곡(曲)자가 합쳐진 글자이다. 글자 그대로 해석 한다면 ‘별의 노래’라는 뜻으로 농사란 별을 노래하는 일 곧 하늘의 기운에 따르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농부는 ‘별을 노래하는 사람’,‘하늘의 기운에 따라 일을 하는 사람’ 이다. 따라서 진정한 농부는 심지 않은 것을 거두려는 거짓된 마음을 갖지 않으며, 땀 흘려 일하는 가치를 알고, 수고로 얻은 열매의 풍성함과 열매를 맺게 하는 자연의 은혜를 아는 지혜가 있기에 그의 마음은 정직하고 인격은 겸손해야 한다.

 

요즘의 시대에 과연 이러한 진실된 농부가 있을까? 책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된 ‘농사’라는 한자에 담긴 의미를 되새기면서 필자의 마음에는 의구심이 생겼다.

 

근로소득을 하찮게 여기고, 불로소득이 최고가 되버린 심각한 사회현상 속에 농지가격의 급상승은 농사를 포기하고 땅을 정리하는 길이 돈을 버는 유일한 길이라고 여겨 시골의 땅들은 부재지주의 땅이 되어가는 마당에 과연 불편한 노동을 감내하며 토지의 가치를 사회적 가치로 승화하려는 진정한 농부가 있겠는가 말이다. 이러한 필자의 부정적인 생각은 귀촌 4년차인 필자가 시골에 내려와 생활하면서 점점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다.

 

땅을 소중히 지키고 가꾸면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 시대의 진정한 농부들의 모습을 직접 보면서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그들의 이야기를 펼쳐 보고 싶었다.

 

오늘 지면을 통해서는 “별을 노래하는 사람1” 병곡면 축동의 박 정호님의 삶을 소개하고자 한다.

 

병곡면 축동의 박 정호님은 대학 졸업 후 결혼을 하고 부산에서 회사생활을 시작했지만 마음이 항상 편치 못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아버님께서 평생 일구고 가꾸어 놓으신 터전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직 학업을 마치지 못한 어린 동생들, 무엇보다도 고향에서 동생과 함께 힘든 농사일을 하고 계시는 어머님에 대한 걱정, 아직 생존해 계시는 조부모님들의 안위,,, 이 모든 것들이 장남인 그의 어깨위에 무겁게 드리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한창 깨가 쏟아진다는 신혼 그것도 첫아이를 임신해서 설레 임으로 가득 할 그 때! 혼자만의 오랜 고민을 끝내고 고향 행을 결정 했다.

 

두렵고 막막한 결정이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성실하게 완수해 내는 것이 돌아가신 아버님께 대한 자식으로서의 보답이라 생각했고,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가장 커다란 문제는 아내를 설득하는 일이었는데, 의외로 아내는 흔쾌하게 허락을 했다.

 

“내가 알고 있는 남편이라는 사람을 믿었어! 저 사람과 함께라면 어디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지” 그때의 일을 묻는 필자에게 담담하게 말씀하시는 사모님의 얼굴을 바라보다 문득 고전시가 ‘정석가’의 한 소절이 떠올랐다.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끈이야 끊어지겠습니까? 

천년을 외롭게 살아간들 

믿음이야 끊어지겠습니까? 

 

참으로 순수한 사랑이다! 사랑에도 조건을 따지는 요즘 세태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박 정호님께서도 이러한 아내의 믿음이 어렵고 힘든 시절을 꿋꿋하게 살아낼 수 있게 해준 버팀목이 되었다고 고마워하셨다.

 

그렇게 84년에 돌아온 고향의 상황은 열악하기만 했다. 70년대 새마을 운동으로 농촌의 상황이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산촌에 가까운 이곳 축동(싸릿골)은 리어카도 다닐 수 없는 산 비탈길을 한참 올라가야 마을이 나오는 대봉산 깊숙한 골짜기에 위치한 심심산골이기에 농사일은 근대와 다름이 없을 만큼 하나부터 열까지 사람의 손으로만 모든 일을 해야만 했다. 그나마 기르던 소가 많은 힘이 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고된 일이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래도 시조부모님과 홀시어머니, 어린 시누이 그리고 박 정호님 내외와 큰아들까지 4대가 함께 생활하는 대가족 살림살이를 꾸려 나가야하는 아내 양 재숙님의 말 없는 수고와 헌신은 박 정호님에게는 큰 힘이 되었고, 아내의 조언은 늘 맑고 올바른 생각으로 마을 일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아침에는 새벽별을 저녁에는 저녁별을 보며 논과 밭을 일구었고, 파종을 하고 비료를 뿌리면 어머님과 아내는 김을 매고, 볕과 빗물을 주는 하늘에 순응하며 이글거리는 태양을 묵묵히 이겨내며 결실을 기다렸다.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맛보았지만 항상 풍성 할 수는 없었다. 양파 값의 폭락, 폭풍으로 논의 벼들은 쓰러지고, 밭에 농작물이 파헤쳐지고, 가뭄과 홍수의 피해, 병충해의 위협 등등,,, 애타는 심정은 그냥 땅에 주저앉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농사를 지으며 깨달은 것은 하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거스르지 않고 감사하며 오늘은 땀을 흘려야 한다는 자연이 주는 교훈이었다. 그러니 멈출 수도, 포기 할 수도, 낙심 할 수도 없었다. 비바람 속에서도 쓰러진 벼를 다시 세우고, 배수로를 다시 만들고, 새로운 지지대를 만들어 주면서 물꼬를 내고, 땅을 갈면서 열매를 얻고자 다시 모든 땀을 쏟았다. 한 해 한 해 그렇게 성실하게 흘린 땀의 결실은 또다시 풍성한 수확으로 되돌아 왔다. 그리고 해마다 차곡차곡 저축한 농사 수익금으로 동생들의 학업 뒷바라지와 경지정리를 하고 농기계도 구입했다.

몸은 고달팠지만 자신이 선택한 삶에 대한 책임을 완수했다는 성취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컸다. 그리고 볕에 감사하고 바람에 감사하고 비에 감사하며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마음을 다해 정성껏 땅을 가꾸었다. 그래서일까 박 정호님의 논과 밭은 기름지고 정갈하다. 주인의 정성이 그대로 묻어나는 듯했다.

 

농사일뿐만 아니라 마을 일에도 정성을 다하셨다. 새마을 지도자와 이장을 하시면서 마을 주민들의 편의와 개인사까지도 세심하게 돌보셨다고 지금도 마을 주민들은 종종 이야기 한다. 마을 일을 하다보면 오해를 받을 때도 있었고 여러 가지 마찰도 있었지만 항상 100% 찬성은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 각각의 의견을 잘 수렴해 나가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고 하시면서 “앞에서 일하는 사람은 항상 욕먹을 준비가 되 있어야한다”라고 그것은 일은 결과가 이야기 해 주기 때문에 당장에 욕을 먹는다 해도 조금만 참고 기다리다 보면 되어지는 일의 결국을 보고 오해가 풀리게 되기 때문이란다.

그래도 사람인지라 속상하고 힘들 때도 많았다며 웃으신다. 지금이야 웃을 수 있겠지만 당시에는 얼마나 서운함이 크셨을까 싶다. 좋은 씨를 뿌리면 반드시 좋은 결실을 추수 한다는 자명한 진리를 깨달은 농부만의 지혜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이장을 하시면서 가장 보람이 있었던 것은 마을 도로확장 공사였다. 오솔길을 조금씩 넓히다가 아스팔트 2차선 도로로 확장한 것이다. 박 정호님은 동민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움직여 준 결과라고 겸손하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더욱 본인에게는 의미가 남다른 일 인 것 같았다.

 

말씀하시는 내내 “내가 한 게 뭐 있나, 우리 마을 분들 모두가 착하신 분들이라 서로 의지하고 도와 가며 살다 보니 잘 할 수 있었지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아가면 좋겠어” 라고 하신다. 마을회관이 없던 시절 여름에는 나무 그늘 밑에 모여 마을 일을 의논하고, 겨울에는 이장집 사랑방에 모여 의논하며 서로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을 챙겨주고 신김치에 들이켰던 막걸리 한사발의 맛! 지지고 볶고 언성을 높이며 다툼이 있어도 툭툭 털어버리고 함께 들이켰던 막걸리 한사발의 정겨움이 그립다는 그의 얼굴에는 힘들고 어려웠지만 그 옛날의 끈끈한 정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묻어났다.

 

앞으로의 희망을 묻는 필자에게 ‘맛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고 하시는 박 정호님을 보면서 충분히 맛있는 인생을 살아온 그가 꿈꾸는 앞으로의 맛있는 인생은 무엇일까 기대해 보며 지금과 같이 어려운 세상사를 살아감에 있어서 우리가 더욱 주목하고 되새겨야 할 마음은 여름 폭우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가을의 풍성함을 기다릴 줄 아는 소박한 농부의 마음인 것 같았다.

 

필자는 글의 시작에서 농사라는 한자에 담긴 의미에 대해 소개했다. 

‘농부’가 하늘의 기운을 따라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진정한 농부인 박 정호님은 감히 ‘군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용>은 사서오경에 속하는 경전 중 하나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지녀야 할 자세와 태도를 제시하고 있는 책으로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저술한 책이다. 이 중용 14장에는 군자와 소인을 이렇게 이야기 한다.

 

君子居易以後命 小人行險邀幸 (군자거이이사명 소인행험이요행)

 

군자는 편안히 머물며 천명을 기다리고, 소인은 위험한 짓을 행하면서 요행(邀幸)을 바란다. 군자는 당연히 해야 할 일에 충실하면서 성공은 하늘에 맡기고, 소인은 반대로 권모술수등 갖은 위험한 짓을 서슴지 않으면서 그것이 요행으로 성공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다. 

농부의 삶을 통해서 배움과 재물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태도와 자세가 과연 군자의 삶을 지향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소인도 못 되는 삶을 살아가면서 군자인척 위선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조용한 성찰이 필요한 것 같다.

 

황미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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