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함양의 단합을 위한 고언 시리즈 두 번째로 진영논리의 폐해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이제 보름 후인 4월 7일(수)이면 도의원 보궐선거가 있고, 1년 후의 군수선거는 아직 많이 남았지만,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편법·불법이 준동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들은 왜 이렇게 함양 땅을 오염시키는 것도 모자라 함양인을 편갈라놓고 그 와중에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 하는가? 지난주 사설에서도 주장한 바와 같이 정치적 세력을 키우는 일은 오직 자신의 리더십과 비전으로 군민의 지지를 얻어내야지, 군민을 분열시켜 그 중 한 편의 지지로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를 구축한다면, 그는 한낱 분열주의자이자 진영논리에 갇힌 사람일 뿐이다.
우리 함양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는 중앙정치 논리에 휘둘리는 경우가 많았다. 중앙당의 공천은 곧 당선이라는 등식이 있었기 때문에 지역발전을 위한 참신한 인물 등장이 어려웠으며, 그로 인한 먹이사슬이 형성되어 지역 부패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며 그것은 토착화되어 ‘너도 그러는데 나도 좀 그러면 안 되냐.’ 하는 풍조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런 상황을 중앙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선거로 우리가 선택한 일이며, 그것을 중앙에서 이용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실제로 이런 상황은 우리가 만든 것이라는 인식과 깨달음이 있어야 할 것이다. 선비의 고장, 역사문화가 넘치는 고장의 후손으로서 선거제도 병폐에 따른 나쁜 관습을 어디보다 먼저 뜯어고쳐야 할 것이다.
함양을 위함보다 진영을 위하는 자, 진영논리로 군민을 호도하는 자는
우리 손으로 퇴출시켜야...
진영논리의 역사는 길다. 가까이는 구한말에 권력자들은 힘을 합쳐 외세를 물리치기보다는 자기진영의 이익만 앞세우다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다. 또 임진왜란 전에 일본에 통신사로 갔다 온 동인, 서인 두 진영의 의견대립을 보면, 서인은 전쟁이 일어난다고 했으며, 무조건 상대 진영을 반대해야 하는 동인은 전쟁이 안 난다고 했다. 진영을 위해서라면 국가 안위에도 눈 감는 게 진영논리인 것이다. 세계적인 진영논리 사례로 미국은 친미나 반공 노선만 내세우면 제3세계 독재정권이 인권탄압이나 민간인 학살을 해도 이를 묵인하고, 민주화세력에 대한 탄압을 지원하였다. 이런 행태의 누적이 나중에 제3세계에서 반미감정이 일어난 원인이 되었다. 또 아시아인을 저급한 인종으로 멸시하던 나치 독일은 같은 진영 동맹을 맺은 일본인에게는 ‘명예 아리아인’이라는 이름으로 취급하는 코미디 같은 모순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처럼 진영 논리는 해결의 논리가 아니며, 갈등을 증폭시키는 논리다. 나라까지 위험에 빠트리고, 심지어 자기 진영의 승리를 위해 외세까지 끌어들임으로써 자신은 물론 국민을 도탄에 빠트리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진영논리의 문제점은 옳은 일을 추구하는 데 있지 않고, 오로지 진영의 승리를 목표로 한다는 데 있다. 당연히 논리적인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수많은 부작용과 함께 상대가 옳지 않은 일을 하게 하는 빌미를 주는데도 불구하고 눈앞의 승리를 위해 이를 외면하는 것이다.
본지에서 누차 주장한 일이지만, 함양지역을 위함보다 진영을 위하는 자, 진영논리로 군민을 호도하는 자는 필히 우리 손으로 퇴출시켜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함양을 위한 다양한 의견과 진정한 토론의 마당을 열어야 한다.
가장 먼저 변하는 지자체가 가장 먼저 많은 혜택과 도움을 받아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이며, 또 그래야만 풍족한 환경을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이것 또한 우리의 선택 사항이며,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인재를 나라에 공급했던 명예로운 고장의 후손으로서 또 관습이나 문화적으로도 공감하는 바가 같은 우리 함양인 사이의 진영 다툼은 우리가 충분히 극복하고 풀어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극복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