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천 재경 백전면 향우회 감사,실용풍수학회 회장 © 함양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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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고의 문화유산 파리(PARIS)
유럽의 중심 파리는 중세와 르네상스시대의 건물부터 초 현대식 건물이 공존하는 예술과 관광의 도시, 유행과 명품과 쇼핑의 도시 등 수많은 수식어로 불리며 보고 또 보아도 끝이 없고, 질리지 않으며 탄성만 나오는 도시다.
파리는 가 볼만한 곳이 너무 많지만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꼭 가 봐야할 10곳을 꼽으면, ①에펠탑, ②개선문, ③ 사크레 쾨르성당, ④루브르 박물관, ⑤오르세 미술관, ⑥샹젤리제거리, ⑦노틀담 성당, ⑧베르사유 궁전, ⑨몽생미셜 수도원, ⑩스트라스부르의 쁘띠 프랑스 등이 있다.
그중 세계 최대의 박물관인 루브르의 경우 건물 외관도 아름답고 화려하지만 225개의 방에 30여만 점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그 규모가 방대하여 제대로 보려면 최소한 일주일은 걸린다. 유명한 상표로는
샤넬, 루이비통, 에르메스, 까르띠에, 로레
알(화장품), 크리스찬 디올, 에비앙(생수), 빠리에(탄산수), 헤네시(꼬냑) 등이 있다.
◈히틀러의 폭파명령을 거부하다
그러나 위와 같은 인류 문명의 보고(寶庫)이자 세계의 문화유산도 2차 세계 대전 당시 히틀러의 광기어린 명령에 의해 파괴될 운명이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폭파 직전의 파리를 구한사람은 적장(敵將)인 코
르티츠 장군이다. 후일 온 인류가 존경 하
는 인물이 된 나찌 독일의 파리점령사령관 디트리히폰 코르티츠 장군은 히틀러의 폭파명령을 거부하고 저항 없이 연합군의 포로가 되면서 파리를 구한 것이다.
◈33일 만에 프랑스의 항복을 받다
프랑스의 면적은 643.80만㎢로서 남한 면적의 약 5.5배, 인구 6700만 명(2017년
기준)의 서 유럽에서 가장 넓은 국토를 가진 나라이자 나폴레옹 시절엔 유럽을 제패한 군사강국이었으며, 2차 대전 당시에도 탱크, 대포 등 군사력이 독일보다 결코 약하지 않았다.
특히 프랑스는 독일의 침략에 대비하여 7400㎞의 마지노선을 구축하는 등 엄청난 준비를 하였으나 1940. 6. 22. 독일군의 기습침공 후 불과 33일 만에 항복하고 말았으며, 히틀러(1889-1945)는 신임했던 코르티츠 중장을 파리 점령군사령관에 임명했다.
히틀러는 파리를 가 보는 것이 일생의 꿈이었다고 한다. 히틀러가 파리를 점령한 후 가장 먼저간 곳이 오페라 가르니에였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길어지면서 히틀러는 미친 사람의 화신으로 변해갔다. 파리점령 4년 뒤인 1944년 6. 6. 미국. 영국, 개나다 등 연합군 15만 4000명의 노르망디 상륙과 함께 전세가 기울어 점령지 파리를 지탱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히틀러는 코르티츠에게 파리의 모든 건물에 대한 초토화 작전을 명령한 후 발작적으로 몸을 떨면서 외쳤다.
“나는 파리를 파괴하라고 명령했다. 그 명령은 집행되었는가?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적장 코르티츠 파리를 구하다
당시 나폴레옹(1769~1821)이 잠들어있는 앵발리드 기념관에는 2톤의 폭약이 장치되어 있었고, 1874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서 무려 400년에 걸쳐 지어진 중세 종교건축의 걸작인 노틀담의 사원에는 3톤의 폭약이 점화를 기다리고 있는 등 파리의 모든 건물과 다리에 폭파준비가 완료되어 있었다
이제 코르티츠의 한마디가 떨어지면 파리는 잿더미가 될 판이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상관의 명령을 어긴 일이 없었던 코르티츠였으며, 파리는 분명 적국의 수도였으나 적과 동지를 넘어서는 인류의 문화유산을 간직한 아름답고 값진 도시였다. 그는 문화와 예술의 유산을 전쟁의 이름으로 한 순간에 파괴할 수는 없었다.
코르티츠는 끝내 폭파명령을 내리지 않은 채 연합군의 포로가 되었다. 그의 깊은 역사의식과 사랑으로 파리는 무사할 수 있었다.
◈영원한 존경을 받다
독일의 바덴바덴에는 온 인류가 존경하는 디트리히폰 코르티츠 장군이 잠들어 있다. 1966년 바덴바덴에서 여생을 보내던 그가 숨지자 세계의 언론들은 진심어린 추도사로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하지만 가장 깊은 애도를 보낸 것은 피 지배자였던 파리 시민들이었다. 그는 명령에 죽고 사는 군인으로서 주군 히틀러의 명령보다 인류의 아름답고 찬란한 문화유산을 지키는 임무를 다했던 장군이었다. 이렇듯 파리가 천하 명당에 자리했기에 기적이 일어났다는 건 필자만의 억측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