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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천의 近世史 탐방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폄하된 건국대통령
이종천 재경 백전면 향우회 감사 실용풍수학회 회장
 
함양신문 기사입력  2018/10/08 [14:50] ⓒ 함양신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이종천 재경 백전면 향우회 감사 실용풍수학회 회장 © 함양신문

 

남 북한의 친일파 청산 비교

종북. 주사파들은 이승만은 친일 청산은 커녕 친일파를 중용했지만, 김일성은 친일파를 철저히 소탕하고 민족정기를 회복했기 때문에 정통성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근거 없는 역사의 날조다.

류석춘, 김광동, 권혁철 교수 등 근세사학자들은, “스탈린과 김일성이 공산주의 사상의 반대파를 숙청하고 지주들 재산을 몰수할 때 상투적으로 씌우는 누명이 친일파혹은 민족의 반역자였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소련 지도부와 김일성은 친일. 반민족 행위를 저지른 사람도 공산 괴뢰정부 수립에 동참하면 문제 삼지 않았다.

, 일제 강점기에 도의원을 지낸 강양욱을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서기장으로, 김일성의 친동생 김영주는 만주에서 일본 관동군 통역관으로 친일행각을 했으나 서열 2위인 부주석에 앉혔고, 만주 검사장 출신 한낙규를 북한 검찰총장으로, 일본제국의 파일럿 출신인 이활은 인민군 공군사령관에, 아사히신문 서울지국 기자출신 정국은을 문화선전부장에, 친일단체 대화숙출신으로 학도병 지원유세를 주도했던 조일영을 문화선전성부수상에 기용하는 등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반면에 대한민국의 초대정부 구성원을 보면, 대통령 이승만(임정 임시 대통령), 부통령 이시영(임정 내무총장), 국무총리 겸 국방장관 이범석(광복군 참모장), 국회의장 신익희(임정 내무총장), 대법원장 김병로(항일 변호사), 무임소장관 이청천(광복군 총사령관), 외무장관 장택상(청구구락부 사건), 내무장관 윤치영(홍업구락부사건), 법무장관 이인(항일변호사. 한글학회 사건), 재무장관 김도연(2.8 독립사건), 상공장관 임영신(독립운동가.교육자), 문교장관 안호상(항일교육가), 사회장관 전진한(국내 항일운동), 체신장관 윤석구(국내 항일운동가, 6.25때 인민군에게 총살당함), 교통장관 민희식(재미 항일운동가), 총무처장관 김병면과 기획처장 이순탁은 국내에서 항일운동을 한 애국자들이었고, 친일파는 한 명도 없었다(하급관리는 별도).

다만 주사파들이 문제 삼는 2대 부통령 김성수는 한민당 당수였고, 일제 치하에서 언론(동아일보), 교육자(고려대), 사업(경성방직, 삼양사) 등 민족혼을 일깨우고 지식인을 양성하는 과정에서 일제에 협력하지 않을 수 없었던 당시의 잣대로 평가해야지 오늘날 기준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조병옥 사망으로 무투표 당선되다.

반대파들이 즐겨 사용하는 언어이자 역사 왜곡의 단골메뉴는 이승만이 부정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것이지만 왜곡된 허위주장이다. 초대 대통령은 1948년 국회에서 선출했고, 1952년 처음으로 실시된 국민 직선제 대통령 선거에서 우남은 이시영에게 600만 표 대 60만 표의 압도적 차이로 당선되었으며,

1956년 대통령선거는 민주당 후보 신익희가 이리 역 유세 중 뇌일혈로 급서하여 조봉암 정도가 경쟁했고, 1960년 대통령 선거도 조병옥 후보가 선거 한 달 전 미국 병원에서 사망하여 무투표 당선되었기에 부정선거를 획책할 이유가 없었다.

특히 당시 이대통령은 86세의 고령이었고, 이기붕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철저히 막아 대통령은 선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몰랐다. 헌법에 대통령 유고시 부통령이 승계 받게 돼 있었으므로 민주당 후보 장면과 자유당 후보 이기붕 간의 부통령 선거가 치열했다. 이기붕의 심복인 내무부 장.차관 최인규, 이성우와 치안본부장 이강학은 3.15 부정선거를 기획하고 지휘했다. 대통령의 이름으로....

부정선거의 원흉 이기붕은 4.19 혁명이 일어나자 경무대로 피신했다가 일가족이 자살했으며 최인규i1961년 군사재판에서 부정선거를 기획. 지휘한 사실이 인정되어 사형이 확정된 후 형이 집행되었다.

 

이승만은 독재자가 아니다

세계의 독재자들 중 히틀러는 2,000만 명을 처형했고, 스탈린은 3,000만 명을 처형했으며, 모택동은 6,000만 명을, 김일성은 동족 300만 명의 죽음에 관련이 있다. 독재자들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 반대파와 국민을 무자비하게 처형했으며, 김일성은 권력을 세습했다. 이것이 독재다.

반면에 우남은 1952년 부산 정치파동 때 당시 내각제로는 전쟁 중인 대한민국을 이끌 수가 없어서 국민 직선제로 대통령을 뽑는 개헌을 한 것인데, 직선제 개헌이 독재인가? 또한 1952, 56년 대통령 선거를 부정선거라고 말하는 정치학자는 없다.

3. 15 . 부통령 선거는 직전의 부통령 선거에서 장면에게 패배한 이기붕이 대통령 유고시 그 직을 승계 받으려는 욕심에서 저지른 선거였지만 이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은 면할 수 없었다. 우남은 시위대가 경무대로 밀고 오는 중 경찰들의 발포로 쓰러진 부상자를 찾아 위문하고 눈물을 흘리며 책임을 통감 했으며, “국민이 원하면 물러나겠다고 말하고 즉시 하야했다.

국민의 원한다고 순순히 물러나는 독재자는 없다. 우남은 개인적으로 치부한 돈도 없어 429일 하와이로 떠날 때 여비한 푼 없었다.

결론적으로 자신의 치적을 내 세우기 위해 전 정권을 부정하는 집단,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종북 주사파들이 우남의 업적을 왜곡하고, 세월이 흘러 진실처럼 굳어졌으며, 그 왜곡된 역사교과서로 공부하는 학생들의 뇌리에는 건국대통령이 아닌 독재자 이승만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인용자료 :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김학은 전 연세대 교수, 주익종 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실장. 김종삼 전 월간조선 편집장의 논문, 저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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