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병법서 <육도(六韜)>에는 “천하자 비일인지천하 천하지천하야(天下者 非一人之天下 天下之天下也)”란 말이 있다.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고. 온 천하 사람의 천하라는 뜻이다. 이 말은 비록 오랜 세월이 지나 낡아 보이나 진실은 민주주의 정치철학과 사고방식을 한 마디로 통합한 금언(金言)이다. 더 쉽게 표현하자면 국가와 민족의 사회는 어느 한 독재자의 소유물이 아니고, 온 국민에 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주권재민(主權在民)이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온 천하 사람의 복지와 권리와 이익을 수호·창달하기 위해서 우리는 국가라는 커다란 권력 기구를 가진다. 국가는 국가사회 전체의 통일적 경영을 보살피기 위해서 대의를 세우는 것이 국가권력이고 정치다. 정치의 목적은 사회정의 실현에 있고, 그 수단으로서 권력이 있다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므로 정의와 권력과의 가치 질서는 준엄·명료해야 하며 전도될 수도 없는 일이다.
우리는 권력과 정의에 관한 명확한 개념과 확고한 신념을 가질 필요가 있다. 권력과 정의는 민주주의 정치의 수단과 목적이요, 국민이 나아갈 정경대도(政經大道)이기 때문이다. 힘은 힘이고, 정의는 정의다. 힘이 곧 정의가 될 수 없듯이 정의가 곧 힘은 아니다. 이것은 해(日)와 달(月)의 구별과 같이 엄연하다.
힘이 곧 정의라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며, 권력은 곧 권력이지, 정의는 아니다. 정의가 힘의 뒷받침이 없으면 불의로 매몰되는 비극의 참담한 현실을 접할 수 있다.
권력의 힘에는 권력자들만이 세력으로 뭉쳐 의인(義人)이 설 곳이 없으면 정의 없는 불구와 불의의 권력이다. 불의의 권력은 힘이 있어 보이지만 약한 바람에도 잘 넘어지는 속 빈 수수 나무와 같은 것이다. 권력의 뒤에는 정의가 뒷받침되어야 권력이 빛날 수 있고, 정의 역시 권력이 동행해야 정의의 색채가 유난히 반짝거리게 된다. 그래서 권력은 정의를 가져야 하고, 정의는 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는 목표요, 힘은 수단이다. 아무리 목표가 위대해도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뒷받침 없다면 그림의 떡과 같은 화중지병(畵中之餠)이요, 아무리 수단이 훌륭해도 뚜렷한 목표가 없으면 무의미하다.
우리나라는 광복 후 정치 현실은 불행하게도 혼란과 타락의 힘을 원천으로 힘만 있으면 정의는 곧 성립된다는 사고방식의 역사길을 걸어왔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국가이다. 민주국가는 법치국가이다. 곧 법으로 다스리는 사회다. 권력자의 절대 권력의 입맛대로 다스리는 군주국가도 독재국가도 아니다. 그래서 권력이 모이는 장소일수록 의인이 많이 모여야 한다. 의인을 내쫓는 일은 권력 만능, 권력 숭배의 독재자들만이 하는 특권이다.
민주제도는 책임정치다. 가장 힘 있는 권력은 정의로운 권력이다. 힘없는 정의는 무능하지만, 정의 없는 힘은 압제다. 힘없는 정의는 반대를 당한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언제나 악인(惡人)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의 없는 힘은 만인으로부터 버림을 당하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로 볼 때 정의와 힘은 병행(竝行)되어야 한다.
옳은 자는 힘이 있어야 하고 주변 역시 강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의는 항쟁(抗爭)을 받기가 쉽고 힘은 힘이 있기 때문에 항쟁을 늘 받는다.
지금 우리 사회는 오래전부터 예수의 초림과 재림 주장을 달리하며 대결하고 있다. 여기도 저기도 아닌 시민들은 초림도 옳고, 재림도 옳다. 왜? 옳은 것만 골라서 서로가 주장하기 때문이다. 양쪽이 다 가짜 주장일 수도 있고, 옳은 주장일 수도 있다. 그러나 힘 있는 세력의 주장이 힘없는 주장을 압도하게 된다. 여기에는 하나 된 법으로 판결을 받을 수 있는 법원도 재판관도 없기 때문에 거리로 나와 함성을 외치며 내 주장이 옳다는 큰 소리가 많은 사람들이 듣고 이해력에 의존하게 된다.
예수의 초림과 재림의 판단은 지구가 열 번을 변해도 옥석을 가리지 못할 것이다. 힘은 언제나 자기의 힘이 정의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정의에 힘이 되어주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거리의 대결에 정의(正義)가 매몰(埋沒)되어 빠져나오질 못하고 있다. 어디에서 무엇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떤 일이든 원인 제공자가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가짜뉴스와 선동의 힘(力)으로 판을 키우고 정의를 제압하려는 것은 반역사 행위다. 민주국가의 마지막 수단은 다수결 원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