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해의 추석을 맞으니 추석날 제물을 구입하려 노인네들이 시장에 들락거린다. 나도 대목 시장에 들려보니 한산하다. 또 추석 연휴가 길어 객지의 사람들이 고향 방문을 자제해서 젊은이들이 오지 않으니까 가끔 아낙네들은 있지만? 그러다 시장식당에서 선배님들을 만났다.
제가 존경하는 선생님과 선배님을 몇 분 만났다. 입만 열면 웃기는 호탕한 분, 인심 좋은 할아버지 같은 분, 같이 운동하는 동호인 들이었다. 나도 팔순이 넘었지만 선배님들이 장수하심은 3만불 시대의 식생활과 의술의 발달이겠지만 기뻤다. 그분들이 장수하심은 평소 스스로 건강을 잘 지켜 왔음이라 본다.
한 선배님이늙음을 비유하는 시를 읊었다.“꽃은 피어도 웃음소리가 없고 / 새는 울어도 눈물이 없고 / 사랑은 불타도 연기가 없으며 / 황혼은 불타는데 끌 물이 없고 / 고향에 돌아와 보니 반기는 이 없네.”하고 옛 시를 읊으신다. 늙으니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그리고 그 선배님과 대화를 하던 중 한 분이 늙은이가 되니 마을 앞에 마을을 지키는 못난 정자(팽)나무 신세와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젊어서 돈벌어 자식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어 교수, 기업 임원을 하지만 정작 자기는 귀향하여 못난 나무 그늘에서 쓸쓸히 고향을 지키는 정자나무 신세란다.
젊은이들이 떠나고 없는 마을을 늙은이가 못난나무 아래 모여서 그 옆의 장승과 함께 마을을 지키는 꼴이란다. 그나마 막내가 귀농해서 농사를 도운다고 하신다. 말하자면 못생긴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격이다.
그래서 자식을 잘 키우면 국가의 자식이 되고, 그다음 잘 키우면 장모의 자식이 되고, 적당히 키우면 내 자식이 된다고 하신다. 그래서 한 명은 시골 실업학교에 보내 가까이 두어야 한단다. 내 손안의 새 한 마리가 숲속의 두 마리 새보다 값지다고 한다. 웃자고 한 말이지만 늙은이에게는 뼈가 있는 말이다. 옆에 있어 집안일을 도와주니 나의 불편을 덜고, 외로움을 달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멀리 있어 일 년에 한두 번 와서 떠들고 가는 자식과 손자들은 나무 위 새소리만도 못하다나?
그리고 땀 흘린 감자 한 조각이 수많은 새들의 노랫소리보다 낫다고 한다. 옛 어른들도 ‘못난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 하셨다. 못난 나무가 구부렁하게 서서 선산(先山)을 지키고 고향을 지키는 것이다. 좋은 땅에서 수려하게 자란 나무는 사람들이 재목으로 쓰기 위해 베어 가버린다. 척박한 땅에 뿌리내리고 자란 소나무는 모진 고생을 하며 볼품없이 자란다. 크게 자라지 못하니 누구도 거들떠보지도 않아 결국 못난 소나무는 산을 지키며 산다. 그리고 씨를 뿌리고 그 씨가 자라서 산이 훼손되지 않게 보존한다.
늙은 정자나무가 마을을 지키면서 나그네를 맞아주며 그늘을 주어 노인들이 모여 소통하며 마음을 여는 공간으로 사랑방 역할을 한다.
그러나 정작 현실은 늙은 나무를 없이 여긴다. 노인들만 사는 마을이라 생기가 적고 삭막하다. 왜냐하면 서로가 고목으로 못난 나무이면서 서로 헐뜯는다. 잘난 나무를 보면서..우리 자식들도 늙으면 고목인 정자나무처럼 고향과 산소를 지키고 효도하기를 바란다. 멀리 있는 박사보다 가까이 있는 멍청이가 낫다 한다. 그래서 교육정책도 바뀌어 못난 소나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실업학교를 많이 육성해야 한다. 그리고 평범하게 정자나무처럼 고향을 지키려는 사람을 정성스럽게 대우해야 한다. 늘그막에 효도 받으려면 말이다. 못난 정자나무가 모여 울창한 숲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마을의 못난 팽나무 숲이 우리였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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