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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 소재우] 함양 충혼탑 내력과 당산
☞ 함양출신 호국영령 추모를 위한 충혼탑 ☜
 
함양신문 기사입력  2023/06/05 [10:27] ⓒ 함양신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송암 소 재 우 본지 논설위원  © 함양신문

 호국의 달 현충일을 맞으니 호국영령 추념행사를 함양읍 두루침 충혼탑에서 행한다. 내가 살고 있는 동내라 충혼탑의 유래를 약술해본다. 함양군의 충혼탑은 함양읍 백연리(두루침)에서 옛 부터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던 당산(堂山) 자리에 있다. 당산 남쪽에서 당산제를 지냈다. 내가 어려서부터 수십 년간 백연리 마을에서 계속 살았기에 충혼탑과 당산의 내력을 어른들에게 들어 잘 알고 있다. 해마다 현충일이 되면 호국영령을 기리는 현충행사를 하면 참례하기하고 행사를 보아 왔다. 그래서 충혼탑 위치의 내력과 속설을 더듬어 보고 충혼탑 건립역사를 서술해 본다.

 

 탑이 있는 당산 모퉁이 바위 돌을 이은대(吏隱臺)라 부르기도 하며 두루침 동내 앞의 와우령(臥牛嶺,한재고개)의 앞 줄기 이다. 와우령은 속설에 의하면 소가 누워있는 모습의 한재 고개를 말하며 아우영이라고도 불렀다. 머리는 이은리와 거면 뒤의 뿔 같은 바위산이며 누운 소의 앞다리 발목부분이 당산 모퉁이(충혼탑)며 뒷다리 부분이 두루침 뒤(백연리)의 벼리 모퉁이며 소고대라 한다. 돌북(상백)동내 뒤의 꼬리는 공설 운동장 줄기다.


 왜 동내에서 이곳 당산에 신을 모시었나 하면 당산 모퉁이 바위로 인해 큰물이 두루치면서 모래가 쌓여 마을 땅을 이루었고 그래서 이름도 두루침이다. 이곳에 마을를 이루어 살게 해준 신을 모시자 해서 신당을 지금의 충혼탑 자리 근방의 고목이 무성한 곳에 지어 놓고 해마다 당산제를 동내에서 지내어왔다. 그리고 그 밑에 있는 인당쏘(印堂沼)에도 제를 지냈다. 그래서 이곳을 당산이라 했고 평화로이 누운 소의 땅에는 풍수설에 의함인지 백연서원이 있었고 선비가 은거한 곳이라는 이은대가 있던 마을이었다. 


 그러다 일제 중기에 당산의 사당을 허물고 그 자리를 넓혀 일본 신사(神祠)를 지어 놓고 그들의 신을 제사 하였다. 그리고 학생들을 동원해 황국신민 맹세를 시키기도 했다. 국도가 뇌산 쪽으로 간 것을 직선화하면서 소의 허리 부분인 산 중간을 잘라 길을 냈는데 한재 고개 두재 고개라 했고 산을 잘라서 길을 내자 동내에 우환이 많고 인당 쏘에서 해마다 물놀이하다 죽는 어린이가 많아지자 당산 허문 것과 길을 낸 것을 원망하다가 해방이 되었다. 해방되자 주민들이 일본 신사를 부수었고 동리 사람들은 이은대에 돌을 주워 모아 돌탑을 쌓고 당산마을 제사를 지내었다.


 북한의 6·25 전쟁으로 함양의 젊은이들이 군인, 전투경찰, 지리산 공비토벌대 등에 출전해 장열하게 전사한 사람이 많았다. 휴전 후 호국을 한 영혼을 달래고 보훈의 뜻을 기리고자 1956년 제1회 현충일 기념식을 한 후 각처에서 충혼탑을 세울 때 함양에 있던 보훈청에서 1959년 당산 신당을 옮기고 그 자리를 정비해 충혼탑을 세워 탑 지하에 1080명 전몰장병들의 위패를 모시었다. 탑 제막 당시 많은 군민과 민병권 국회의원, 백남근 장군 등이 조사(弔詞)를 해했다. 그 후 20여년 지나니 파손되고 초라하여 1989년 7월에 재건축을 하여 가로 7.8m 세로 7.8m 높이 11.8m의 돌로 된 탑과 주위 면적 6323㎡인 현재의 대(臺)가 만들어 졌다. 그 후 시멘트로 된 계단에 돌을 입히는 보수와 식수 및 주변을 정화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2012년 5월 3일에는 6.25참전 경찰유공자 참전비가 충혼탑 오르는 계단 아래 공터에 세워져 같이 참배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요즈음 현충일 충혼탑 참배나 제례(祭禮) 행위가 국내 정세에 따라 변해 지금은 다소 시들해진 느낌이 든다. 당시의 유가족들도 줄어들고 남으신 어른들도 노쇠해 참여자가 적거나 못가니 행사를 위한 관변 행사로 퇴색한 것 같다. 나는 해마다 불청객으로 참여해 관망해 왔는데 초창기는 학생들과 청년들이 많이 참여해 조상들의 호국정신을 기리는 기회를 갖게 했는데 지금은 현충일을 노는 날로 여겨 관심도 없고 가정에 조기(弔旗)도 달지 않는다. 수년간 종북 세력의 팽배로 국가 안보가 해이해진 것이다. 젊은이의 애국심과 유비무환의 충성심 발로를 위해 다수가 참여하는 알찬 행사를 하였으면 한다. 호국정신과 국가 성쇠는 정비례한다고 한다.  그리고 함양의 충혼탑이 지리산 주변 공비토벌에서 산화한 모든 국군장병의 충혼탑이 되도록 위상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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