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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교육학박사 박재성] 외국인이 본 훈민정음
 
함양신문 기사입력  2021/05/03 [09:54] ⓒ 함양신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사단법인 훈민정음기념사업회 이사장, 훈민정음탑건립조직위원회 상임조직위원장, 한문교육학박사 박재성   © 함양신문

“우리 조선은 조종 때부터 지성스럽게 대국을 섬기어 한결같이 중화의 제도를 따랐습니다. 이제 글을 같이 하고 법도를 같이 하는 때를 당하여 언문을 창제하신 것은 보고 듣는 이를 놀라게 하신 일입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본뜬 것이므로 새로 된 글자가 아니다.’라고 합니다. 하지만 글자의 형상이 비록 옛날의 전문(篆文)을 모방하였을지라도 음을 쓰고 글자를 합하는 것은 모두 옛것에 반대되니 실로 의거할 데가 없사옵니다. 만일 중국에라도 흘러 들어가서 혹시라도 비난하여 말하는 자가 있사오면, 어찌 대국을 섬기고 중화를 사모하는 데에 부끄러움이 없사오리까.”

 

이 글은 훈민정음을 반포하기도 전에 사대모화에 젖은 보수파 학사 일곱 명을 대표하여 최만리가 세종대왕에게 올린 장문의 상소문 중 일부분이다. 6백 년이 다 되어가는 2021년 다시 읽어봐도 너무나 굴욕적인 필치에 필자의 얼굴이 화끈거린다. 만약 이 상소문을 읽은 세종대왕의 성품이 연약하여 명나라의 비난이 두려운 나머지 훈민정음 반포를 포기하였더라면 오늘을 사는 우리는 과연 어떻게 문자 생활을 하고 있을까 상상해 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건 아니올시다’이다.

 

훈민정음이 반포된 1446년으로부터 440년이 지난 1886년 23세의 나이로 한국에 와서 외국어를 가르치고 광무황제(고종)의 외교 자문을 맡으면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외국인'으로 알려진 미국인 독립운동가 호머 베절릴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1863.1.26 ~1949.8.5)박사는 131년 전 미국 언론에 기고한 '조선어'(THE KOREAN LANGUAGE)라는 기고문에서 "알파벳과 비슷한 훈민정음은 완벽한 문자"라며 "조선어(훈민정음) 철자는 철저히 발음 중심이다. 영국이나 미국에서 오랫동안 갈망하고, 학자들이 심혈을 기울였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한 과제가 조선에서는 수백 년 동안 현실로 존재했다."라고 평가했다.

 

19세기 서양인들은 한국에 도착하여 한국인에 대한 첫인상으로 대체로 가난에 찌들고, 무기력하고, 더럽고, 겁이 많고, 무절제한 사람들로 단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에 오래 머물러 본 그들은 호머 헐버트처럼 한국인이 쓰는 문자 체계의 참모습을 자각하면서 한국인에 대한 선입관이 긍정적으로 바뀌어 간 것을 여러 문헌에서 발견할 수 있다.

 

20세기에 들어서도 서양 학자들은 한결같이 훈민정음의 위대성을 극찬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언어학자인 게리 키스 레드야드(Gari Keith Ledyar) 교수는 “훈민정음은 세계 문자 사상 가장 진보된 글자이다. 한국 국민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문자학적 사치를 누리고 있는 민족”이라고 하였고,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교수인 제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자는 훈민정음이다. 훈민정음은 인간이 쓰는 말의 반사경이다. 훈민정음이 간결하므로 문맹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다.”라고 극찬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언어학자인 시카고대 제임스 맥 콜리(J.D. McCawley) 교수는 “훈민정음은 지구상의 문자 중에서 가장 독창적인 창조물이다. 한국인들이 1440년대에 이룬 업적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다. 500년이 지난 오늘날의 언어학적 수준에서 보아도 그들이 창조한 문자 체계는 참으로 탁월한 것”이라고 하였고, 하버드대학의 에드윈 라이샤워(E.O. Reischauer) 교수는 “훈민정음은 세계 어떤 나라의 일상문자에서도 볼 수 없는 가장 과학적인 표기 체계”라고 평가하였듯이 서양인들이 훈민정음의 놀라운 특성을 발견하면서부터 그들이 가졌던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관은 변하여서 한국인은 지구상에서 가장 완벽한 문자를 쓰고 있으므로 머지않아 세계적인 지도자의 나라가 될 것이라고 고백한 지 어언 한 세기가 지났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엄청난 문자의 구조적 변화를 겪게 되면서 세종대왕이 수많은 날을 연구하여 창제한 훈민정음 28자의 위대함을 애써 외면한 채 억지로 비틀어 24자로 줄여 쓰는 것도 모자라서 훈민정음을 사용하는 것을 자학하고 부끄러워하게 되었다. 동사무소가 언제부터인지 ‘주민센터’로 바뀌고, 전국의 아파트 이름들은 영어인지 우리말인지 모를 정도로 국적 불명의 영어와 조합을 해야만 고급 아파트로 생각하기 시작했고, 각 방송에 출연하는 방송 진행자는 물론 출연하는 국어학자들마저 앞다투어 외래어를 섞어 써야만 지식인처럼 보인다는 착각 속에 살아가는 우리가 우리말로 사용해도 무방한 용어들을 파괴해 가는 폐해를 자각하기도 전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약 호머 헐버트 박사가 방문해서 이곳저곳에 붙여진 수많은 외국어 간판들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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