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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 소재우] 한글날, 우리말 큰 사전의 내력
 
함양신문 기사입력  2024/10/07 [12:52] ⓒ 함양신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송암 소재우 본지논설위원  © 함양신문

한글날 !, 올해 578주년 한글날이라 광고한다, 여러 행사 중에 우리말(국어) 사전에 대한 말은 없었다. 체계적인 말의 뿌리인 ‘우리말 사전’에 대한 관심이 없다. 인터넷에서 한글 용어를 찾으니깐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것도 한글 사전에 근거를 둔다. 한글날도 따지고 보면 우리말의 역사 가운데서 생겼는데 유감이다. 그래서 우리말 국어사전에 대한 역사적 유래를 살펴 뿌리를 제대로 알리려 한다.

 

말은 한 민족의 소통 언어인 동시에 그 민족이 가진 정신적 재산의 총목록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말을 떠나서는 한시도 제대로 살 수 없다. 그런데 옛날에는 한자 말에 매여 상류사회 하층사회에 소통이 잘 안 되었다. 일제 때엔 일본말 보급을 장려해 우리말의 존재가 위태로웠다.

 

우리말은 우리 민족에게 필요한 것인데 도리어 한문과 일본 말에 의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우리가 힘써 배우고 닦고 한 것은 다만 남의 말, 남의 글이었다. 제 말과 제 글은 아주 무시하고 천대해 왔다. 옛날에는 한문 자전(옥편)이나 뒤쥐고 우리말 사전은 아예 없었지만 필요 조차 안 느꼈다. 프랑스 선교사가, 미국 선교사가 선교를 위해 자기들 필요에 의해 조선어 사전을 자국어로 만들었다. 제 나라말로 된 사전을 만들지 못한 것은 수치이며 문화 창달을 기할 수 없다는 것을 깊이 느꼈다.

 

그래서 우리말로 된 사전을 만들자고 처음 계획한 것은 1910년 광화문에서 착수하여 수년간 힘썼다.<큰사전 머리말>

 

세종이 한글 반포한 1446년 이후 500여 년 가까이 우리말 사전이 없었다. 역관(譯官)들을 위한 초보적인 대역사전(對譯辭典)이 교재용으로 나왔다. 선교사들이 1864년 라틴어 ‘라한사전’을 시작으로 불한사전(1869), 노한사전(1874), 영한사전(1891)을 자국어로 한국어를 설명했다.

 

한국어를 우리말로 풀이한 사전을 펴내려는 시도는 최남선이 1910년 설립한 광화문의 고전간행 단체였다. 주시경, 김두봉 등이 최초 국어사전 ‘말 모이’ 편찬을 준비하다가 주시경 사망과 김두봉 망명으로 중단되자 원고를 1927년 계명 구락부에 넘겼고 최남선, 정인보 등 다수가 후속 작업을 하던 중 1929년 조선어연구회(한글학회)의 조선어사전 편찬회가 계속했다. 그외 1938년 문세영이 ‘조선어사전’을 내었는데 본문 1,689쪽에 어휘 10만 개가 넘었다.

 

당시 조선어 편찬회 작업도 마무리 단계로 1939년 원고 준비를 마치고 총독부 검열을 마치고 편집을 하고 조판을 하는데 1942년 10월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등이 투옥되는 조선어학회 사건이 터졌다. 일본 경찰에 압수된 26,500여장의 원고도 사라졌다가 다행히 1945년 9월 8일 서울역의 창고에서 발견되어 편찬 작업을 계속했다. 이극로, 정태진 등이 원고를 손질해 출판하려 출판사를 알아봤으나 종이가 없어 거절당했다.

 

을유문화사 정진숙 사장에게 간곡히 부탁해 ‘조선말 큰사전’ 제1권(ㄱ~깊)을 1947년10월 9일 출간 했다. 전쟁 중에도 후속작업을 해 미국 록펠러재단이 종이와 잉크를 보내 줘서 1949년과 1950년 각각 2권과 3권을 펴냈다. 1949년 조선어학회가 ‘한글학회’로 개명되어 3권부터는 한글학회 지은 큰사전으로 바뀌었다. 1957년 6월 4권과 8월 5권에 이어 10월 9일 마지막 6권이 나왔다. 전체 6권에 본문 3천558쪽에 표제어는 164,125개였다. 현대 우리말 표준어, 한자 말, 외래어, 숙어, 각종 전문용어, 사투리, 명승고적, 유명땅이름 등이 망라되었다. 당시는 백과사전이 없던 때라 백과사전 역할까지 하였다. 길게는 47년 짧게는 28년 만에 끝난 대역사 다.

 

이번 10월 9일 한글날은 큰사전 제1권이 빛을 본지 77년 6권이 완간 된지 67년이 되는 날이다. 그사이 숱한 어휘가 사라지고 생겨나고 그 뜻이 변하는 가운데 수많은 사전이 출간 됐지만 모두 큰사전의 든든한 토대위에 된 것이다.

 

한국어 사용인구는 전 세계에서 한류 붐을 타면서 늘어나고 있다. 한국의 경제성장과 한류를 타고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이 늘고 있다. 한국에 유학 중인 외국 학생이 200,000명에 이른다. 이들이 우리말 사전을 들고 공부하는데 큰사전의 버팀목이 있어서이다. 578돌 한글날을 맞아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에게 감사한다. 일제의 혹독한 탄압과 해방 후 혼란과 가난 속에서 우리말 큰사전을 편찬한 학자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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