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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역사연구소장 박선호] 유토피아 UTOPIA는 존재하는가?
 
함양신문 기사입력  2021/03/29 [10:35] ⓒ 함양신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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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란?

 
영국의 대법관인 Thomas more가 쓴 <이상적인 국가(國家)>에서 나오는 말이다.  이상적인  나라는 “부정도 없고 빈곤도 없으며 압제도 없으며 전쟁도 없는 사회를 말하는 것으로  가짜가 하나도 없는 사회”  “인간의 가짜, 물건의 가짜, 사상의 가짜, 정치의 가짜, 가짜 기업인, 양심을 팔아버린 언론인, 돈의 노예가 된 목회자 종교인, 가짜부부 등 가짜가 없는 세상을 유토피아라고 했다. 어원은 그리스어의 outopos다. ou는 not이고 topos는 place로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는 나라>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꿈속에서나 생각할 수 있는 몽상(夢想)적인 세상을 유토피아라고 한다.  토마스 모아가 유토피아 용어를 사용한 목적은 1516년 당시의 영국의  정치, 경제적 모순을 지적하고 비판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쓰여 진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가진 용어가 수백여 년이 지난 오늘날 보편적인 용어처럼 신문지상에 등장하는 것에 우려를 표하며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유토피아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는 정확하게는 알 수 없어나 무언가는 전달하려고 시도를 했을 것이다. 유토피아라는 말은 접하는 사람의 성향이나 수준 등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방향이나 깊이의 정도는 크게 다를 수 있다.  이런 용어를 반복적으로 듣게 되면 그런 세상이 오지 않는 것은 자신의 노력이 부족한 것이라고 착각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국가적인 낭비이며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수 도 있는 것이다.  절대로 달성할 수 없고 있을 수도 없는 몽상적인 세상을 <언젠가는 실현할 수 있은 이상적인 나라?> 라고 유도한다면 그것 자체로도 회색지대(灰色地帶)를 조성하려는 의도적인 회색분자(灰色分子)로 의심을 받거나 낙인(烙印)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작은 복지문제를 가지고 그것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는 실현 불가능한 유토피아로 연계한다면 그 의도적 근거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데올로기는 유목민 시대에는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농업혁명이 일어나 정착을 하면서  생산수단인 땅을 누가 통제를 하는가에 따라서 이익집단이 발생하고 이데올로기가 등장을 한다.  봉건시대 자급자족의 장원에는 영주가 주인이고 나머지는 소작농이거나 노예였다. 그 다음은 땅을 소유한 지주가 생산수단인 땅의 주인이었고 18세기의 산업혁명에서는 생산수단의 통제권은 자본을 가진 자본가에게 넘어갔다.  생산능력이 대량생산을 하는 기계를 따르지 못하는 농업노동자들은 산업노동자로 산업사회의 부속품이 되고 토지는 공장부지로 빨려 들어갔다. 

 

생산수단이라고는 몸뚱아리 밖에 없는 농민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들었고 길거리 노숙자는 증가하고 부랑자는 거리를 메웠으며 술집은 한잔 술로 소외된 슬픔과 시련을 해결하려는 사람들로 넘치고 먹고 살기 위해서 매춘이 범람하는 사회로 변했다.  1789년 7월 14일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 구체제 <ancient regime> 왕정은 무너지고 시민이 주인인 시민사회로 변했다. 1844년 영국의 공장법에서 “부녀자와 9살 이하의 어린이는 일일 10시간, 주당 60시간이상을 시킬 수 없다,” 라는 법이 생겼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4살 이하도 새벽부터 일을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을 정도로 자본가들의 착취는 무자비했다. 

 

그러나 유럽은 총기의 발달로 식민지를 개척하였고 지식인들의 수고로 자분주의 수정이라는 복지제도의 보완으로 자본주의 모순을 인내하며 극복을 했는데. 공산주의 사상의 발생지, 마르크스가 태어났고 공산주의 사상의 모태가 된 배경사회인 유럽보다는 러시아와 중국이 공산주의혁명의 실험장이 되어, 동족이 동족을 살해하고 동족이 동족을 억압하고 통제하고 착취하려는 비인간적이 행위를 일고의 반성도 없이 6000만 명을 살해하였고 지금 이순간도 그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  생각하고 또 생각을 해도, 자기 동족을 유토피아 실험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해 할 수 없는 한심한 짓이다. 못난 자식이 자기를 키워준 아버지 어머니에게 은혜를 갚기는커녕 부모형제나 조상을 원수로 생각하는 것, 이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더구나 공자, 맹자의 도(道)를 자랑했던 중국에서 말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확실하고 분명한 것은 없다.  지금까지 아무도 분석해 보지 않았던 과학적인 사고와 비과학적인 사고의 차이에 그 원인이 있지 않을까?  총기가 발달하거나 기술의 발달은 과학적이어야만 하지만 공맹의 도(道)는 절을 몇 번을 해야만 충(忠)이 되고 효(孝)의 수준에 도달하는지가 과학적으로 증명을 할 수도 없고 항상 중용을 지켜야 하는 것에 그 책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공산주의 종주국을 자처한 거대한 소련연방은 1917년 볼세비키혁명으로 왕정(王政)을 무너뜨리고 공산당이 집권을 하였고 1991년 12월 25일 오후 7시35분 크레물린 궁에서 붉은 적기(赤旗)를 내리고 제정러시아의 깃발인 삼색기를 다시 올림으로서 74년간의 고통과 인권과 정의, 자유를 억압한 비인간적인 공산주의 실험, 2000만명을 학살하고도 “능력대로 일하고 원하는 대로 가져간다는 공산주의” 유토피아는 오지 않았고 자본주의와의 경쟁애서 철저하게 패하여 스스로 자멸을 하면서 <유토피아는 없다.>라고 실토를 했다. 1975년4월17일 집권한 캄보디아 폴포트정권은 3년8개월 동안 지식인 성직자를 포함하여 170만 명, 당시 캄보디아 전체인구의 1/4 을 학살을 해도 유토피아는 오지 않았고 베트남, 쿠바 등등, 사회주의를 표방한 나라들은 하나같이 실패한 국가로 가난한 백성들이 오늘도 울부짖고 있다.  이들의 공통적인 현상은 알반백성과 공산당원들을 차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산당원은 국가와 공동경제체제이지만 일반백성은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실례로 중국이 경제사정악화로 임금을  5000위안에서 3000위안으로 삭감하는데도 공산당 당원들에겐 1000프로의 성과급을 배당함으로써 백성이나 국민의 나라가 아니라 당의 나라라는 것은 확실히 증명되고 있고 군대가 변방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 주둔함으로써 군의 존재 목적이 국경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저항을 억압하기 위하여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을 추종을 한다거나 몽상적인 유토피아 용어를 남발하며 회색지대를 만들거나 스스로 회색분자(灰色分子)가 된다는 것은 잘못된 선택이다.  중국의 역사책 사기(史記)를 다 봐도 그들에게는 단군의 이념인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弘益人間)과 같은 사상은 없다.” 오로지 힘센자를 중심으로 이합집산(離合集散)을 하는 싸움꾼들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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