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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중] 만남(당곡 정희보 선생)
 
함양신문 기사입력  2021/01/11 [10:06] ⓒ 함양신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임채중 교육삼락, 화산서원이사           © 함양신문

영호남의 인재 당곡서원(서당)에 가득차다

 

스승과 제자의 만남은 복불복을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잠깐의 인연이 아니라 영혼이 함께한다. 삼강오륜 속 임금과 신하의 만남이나 부모의 만남, 배우자의 만남도 같다. 부모와 자식의 만남에서 한편이 복이라도 다른 편이 불복이면 모두가 불복이다.

 

폭군 밑의 충신이나 간신은 모두가 불행하며 부모와 자식은 바꿀 수도 없다. 더구나 신하가 임금을 바꾸기는 어렵다. 유교 강령은 충신, 효자, 예를 지키는 선비정신으로 나타난다. 군사부일체 스승과 제자의 만남도, 부모 만남도, 임금의 만남과 같다.

 

국도 수동에서 거창 가는 길 5분이면 원평리 동안마을이 나온다. 남계서원 뒷길 500m지점 감모재 재실 옆 당곡선생 신도비 – 바로 위 야트막한 언덕 묘소 당곡 정희보 선생의 묘소 비문은 풍화로 읽을 수 없지만 심독한다. 그 아래는 후손들이 자리하여 받들고 있다. 제자들이 서원에 모셨지만 훼철되어 감모재를 건립하여 모시고 있다.

 

좌안동 우함양의 명예를 일구어 오신 선생의 제자 중에는 인재가 많다. 영남 호남 땅의 인재 반은 선생의 문하생이라고 할 만큼 인재가 배출되었다. 이조판서를 지낸 文孝公(문효공) 옥계 노진, 이조판서를 지내고 文淸公(문청공) 시호를 받은 청련 이후백, 이조판서에 증직된 九拙(구졸) 양희 선생, 대과에 급제하여 좌우승지 5읍 守宰한 濫溪 임희무(林希茂). 남계서원 창시자 개암 강익, 홍문관 전한 양성헌 도희령, 죽암 양홍택, 우천 우적, 죽헌 정지, 토탄 변사정 문인록에 있는 제자다.

 

당곡은 1488년 남해에서 태어났다. 17세에 함양군 수동면 당곡으로 이주했다. 글공부 열심히 하는 모습이 장인의 마음에 들어 장가들었다. 부인은 春塘(춘당) 박맹지 공의 손녀다. 박맹지 공은 구천서원에 배향되어 있고 함양읍 백천리 한징기(大樹)에서 태어나 문과급제 삼가 현감을 지냈다. 당곡이 이주해 온 함양 동면 모간리는 수동면 우명리이다.

 

독학? (스승 없이 혼자 공부함) 사십이 다 되어 서당을 열어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이곳 「당내미」 당곡 인듯하다. 그의 교육철학이 궁금하다. 함양은 당유학의 계통을 이어온 고운 최치원이 통일신라 말기까지 태수로 지내면서 유학의 토양이 내린 곳이며 고려시대 목은 이색(함양 재궁마을), 포은과 야은 고려 3은의 절개가 서려 있다. 조선조 점필재, 일두 정여창, 한훤당 김굉필, 조광조, 남명 조식으로 이어가는 과정 속에서 일두 정여창의 학문적 영향을 가장 가까이에서 받았다.

 

당곡의 교육사상이나 학문은 알 수 없지만 훌륭한 스승으로 이름난 제자들을 길러 당시 사람들은 당곡서원을 가르켜 「물 반 고기 반」 이란 말로 풍자했다. 시골 서당에서 이조판서를 3명이나 배출하고 많은 급제자와 학자가 쏟아져 나와 영호남의 선비가 많이 모였다.

 

당곡의 교육 방법은 그의 행장에서 엿볼 수 있다. 학습방법의 특이한 점은 토론식 학습으로 오늘날에도 학습효과가 인정되어 활용하는 학습이다. 500여년전에 이루어졌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학습으로 얻어진 지식을 보충심화하는 학습방법으로 유학의 경전이나 문구를 단순 암기하고 글로 표현하는 데서 나아가 토론을 통해 심화 보충하여 과거시험에 응했고 관리로서 덕목인 충·효·예를 실천할 수 있었다. 이런 내용은 제자들의 행장 속에서도 나온다.

 

일두 정여창의 유풍이 살아 숨 쉬는 이곳 당곡은 일두선생의 성리학을 받아들여 제자를 길렀다. 스승과 제자의 만남은 복불복을 함께하는 사제 간의 관계로 시간과 장소, 대상과 조화로 3위 일체 ‘졸탁동시’다. 함양의 성리학 기운과 당곡선생의 높은 학문, 제자(노진, 이후백, 양희, 임희무 등) 들의 높은 학구열의 결과이며, 이 과정에서 선생의 학문과 열정이 훌륭한 제자들을 키워 충효의 고장, 유학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세월이 지나 지하에서 제자들의 행장(행적이 적힌 글)이 세상에 알려져 칭송받을 때 스승의 보람을 느껴셨을 것이다.

 

성리학의 본고장 강직한 선비의 배출로 사화와 당쟁을 겪으면서 굽히지 않고 승화되어 서원의 꽃으로 피어난다.

 

남계 청계 구천 화산서원 조손과 형제자매들의 혈연으로 혼과 정신이 엮여진 공동체로 천령 삼걸을 배출 하였다. 당곡 정희보 선생의 유학정신은 좌안동 우함양의 기틀이 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된 남계서원의 정신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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