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방향으로 공을 차 내지 못하는데 그치지 않고 엉덩방아까지 찧는 게 헛발질 망신이다. 신발이라도 벗겨져 하늘로 솟구치면 상대방 관중석에서 터지는 환호성은 우리 편의 야유와 탄식에 뒤엉켜 헛발질 선수를 더 쑥스럽게 만든다.
실제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 대표로 상림 숲 운동장에 섰다가 그런 일을 겪었다. 봉전 촌놈이 첨으로 면 경계를 넘어 함양 읍내까지 진출한 게 무리였다. 있는 힘을 다해 내질렀는데 신발짝이 공보다 더 멀리 날아가는 묘기를 부린 것이다. 형이 신던 낡은 운동화를 어머니가 바늘로 겹겹이 꿰매 주신 은공도 무색하게 운동장에서 몇 번 버팅기자 실밥이 터져버렸고 꿰맨 운동화는 무한 자유를 얻어 창공을 날았다. 그러고도 경기에서 이겼다면 기네스북 감이리라. 우리 봉전 초등학교 대표팀은 씨름, 노래자랑, 주산 놓기, 암산 등 모든 부문에서 우승 트로피를 다 양보 당했다.
최근에도 헛발질을 했다. 그동안 했던 내 인생의 헛발질이야 셀 수도 없이 많지만 드러난 것보다 안 드러난 것이 많은데 이번 헛발질은 만천하가 다 알아버렸다. 웬수는 단톡방이었다.
앞선 사연은 알 길이 없고 표정도 감정도 없는 단체 카톡방의 문자는 이런 사고를 일으키기에 안성맞춤이다. 내가 오랜만에 들어 가 본 그 단톡방은 30여 명이 모여있는 곳이다. 가장 마지막에 있는 문자가 내 눈길을 붙들았다. ‘정*희’라는 여성의 이름이었다. 정*희씨가 프랑스에서 된장 20킬로그램을 우체국 택배(배편)로 보내달란다고 누가 문자를 올린 것이다. 문자를 올린 사람을 편의상 ‘ㄱ’이라고 하자.
‘ㄱ’의 문자는 다른 설명이 없었다. 누구를 지목하지도 않았고 어떻게 된장을 마련하자는 제안도 없었다. 그냥 정*희씨의 프랑스 주소만 같이 올렸다. 이 여성의 이름을 특별히 내가 주목하는 것은 내 친구의 동생인데다가 작년 가을에 캐나다에서 귀국하여 국내에서 결혼식을 올린 우리 딸의 짝궁이 프랑스 청년이라 통역을 이분에게 맡기게 되는 일이 있어서였다.
더구나 2017년 남북관계 물꼬가 터일 때 이 여성은 프랑스 국적이라 북한을 서너 번이나 여행을 다녀와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북한의 생생한 일상을 전해 주기도 했었다. 프랑스에서 한인 단체의 수장도 했던 여성이다.
‘ㄱ’의 문자가 올라온 뒤로 하루가 지나도 반응이 없었다. 사공 없는 조각배처럼 프랑스 주소와 된장 20킬로그램이 방치되어 있었다. 외로워 보였다. 된장이 아니라 정*희씨가 말이다. 내 눈에 그렇게 보였다. 이때가 내 헛발질이 시작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우선 된장을 알아봤다. 이왕이면 안부 전화 생색도 내고 오랜 무소식의 죄송함을 벗을 양으로 안의 안심마을에 계신 된장의 달인인 노령의 외숙모께 전화를 걸었다. 아뿔싸. 된장 달란 얘기를 차마 꺼내지 못했다. 그 말을 하기엔 일상 안부 묻는데에 너무 시간을 써 버렸다. 뒤늦게 된장 이야기 꺼내기에는 내 안부 전화에 감동한 외숙모에 대한 배신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시치미 뚝 떼고 전화해서 된장 얘기를 할 생각으로 전화를 끊었다. 첫 헛발질이었다.
단체 카톡방 회원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두 번째 헛발질이었다. 친구들 몇몇은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요청 글을 직접 올리지 않고 굳이 ‘ㄱ’을 통해 단톡방에 올렸는지 아는 사람도 없었다. ‘ㄱ’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된장만 구해서 되겠는가. 왜 그녀가 배편 택배를 원했는지 알아봐야 했다. 항공 수화물은 된장을 취급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선박 택배가 값이 싸서인지 알아보았다. 알아보나 마나 뻔했지만 여기저기 알아봤더니 짐작과 똑같았다. 세 번 째 헛발질이었다.
겨우 연결이 된 ‘ㄱ’의 설명을 듣고 내 헛발질의 전모가 드러났다. 정*희가 국내에 머물 당시에 여럿이 모여 된장을 같이 담았고 그 된장을 보내는 실무 일을 맡은 친구가 있는데 개인 카톡을 보낸다는 게 실수로 단톡방에 올린 것이라고 했다. 망신 주는 사람 하나 없고 그렇게까지 신경 써 줘서 고맙다는 인사만 거듭 들은 헛발질이었다. 외숙모에게 된장 얘기 안 꺼낸 게 다행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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