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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충현 출향인의 고향 그리기] 고향 함양과 함양인
 
함양신문 기사입력  2020/05/25 [09:53] ⓒ 함양신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외지에 나가 살고 있는 함양 출신 출향인들은 지역별로 향우회를 조직하여 함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친목을 도모하면서 고향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각 지역별 향우회의 연계와 협력을 위해 만들어진 전국 단위의 조직이 재외함양군향우회연합회입니다.

 

사람은 무언가를 좋아하면 더 알게 되고, 알면 알수록 더 좋아하게 된다고 합니다. 타향에서 살아가고 있는 출향인들이 함양을 더 잘 알고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도록 재외함양군향우회연합회 권충현 회장이 쓰는 ‘출향인의 고향 그리기’를 연재합니다. 그리기는 그리워하기와 서술하기의 복합적 의미입니다.

 

필자는 수동면 도북 출신 출향인으로 대구광역시동부교육청 교육장을 지내고 5년간 재대구경북함양군향우회 회장을 맡아왔으며 현재 재외함양군향우회연합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국교원대학교에서 교육학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지도위원, 남계서원 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권충현 재외함양군향우회 회장   © 함양신문

고향과 어머니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가슴이 따뜻해진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외지에서 평생을 살아왔기에 줄곧 함양에서 살아온 사람들보다 고향이라는 말, 함양이라는 이름은 내게 언제나 그립고 따뜻한 말이다. 중학교까지만 함양에서 다니고 그 이후 수십년 세월을 줄곧 타향에서 살아왔지만 내 생각과 생활 중심에는 함양이 반석처럼 듬직하게 자리하고 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삶의 기반이 지연(地緣), 학연(學緣), 혈연(血緣)이다. 함양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고향에서 살든 외지에 나가 살든 모두 함양을 지연으로 연결된 사람들이다. 또한 지역의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교우와 선후배 관계로 맺어진 학연을 지니고 있으니 함양인은 자연스레 지연과 학연으로 얽혀 있다. 그러면 혈연은 어떨까? 우리 함양인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긴밀하게 핏줄로도 얽혀 있다.

 

안동권씨 집성촌인 도북에서 태어나고 자라 다른 성씨에 대해 잘 모르던 필자는 함양중학교로 진학하면서 함양 사회의 성씨별 존비 의식(尊卑意識)과 자존심 갈등을 알게 되었다. 학교에서 만난 다양한 성씨의 친구들이 자기 집안 내력을 자랑하며 자기들이 더 뼈대 있는 집안이라고 다투는 것을 자주 봤기 때문이다. 풍천노씨, 하동정씨, 나주임씨, 반남박씨, 진양강씨, 달성서씨, 진양하씨, 함양여씨 등 여러 집안 아이들의 자랑과 자존심 싸움을 보면서 그건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그들의 자랑스러운 세계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에 함양지역 여러 집안의 족보를 연구하면서 그 친구들 모두가 나와 무관한 존재가 아니라 핏줄로 얽히고설켜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풍천노씨 집안의 옥계(玉溪) 노진(盧禛), 사암(徙菴) 노관(盧祼) 형제분의 후손들, 나주임씨 남계(蘫溪) 임희무(林希茂), 임희수(林希壽), 임희영(林希榮) 삼형제분의 후손들, 안의 김녕김씨 김희년(金禧年), 김덕년(金德年) 선생 형제분의 후손들이 모두 삼괴당(三槐堂) 권시민(權時敏) 할아버지의 외손들이었다. 삼괴당 권시민 선생의 외손자 남계 임희무 선생의 따님이 일두 선생의 증손자 정대민(鄭大民) 공의 부인이니 정대민 공의 후손들은 일두 정여창 선생의 후손인 동시에 삼괴당 권시민 선생, 남계 임희무 선생의 후손이기도 하다.

 

춘당(春塘) 박맹지(朴孟智) 선생의 증손자인 박승남(朴承男) 공의 따님 반남박씨께서 임진왜란 때 유복자인 열세살 어린 아들을 데리고 친정인 가성 인근 도북으로 들어온 것이 도북 권문 400여년 세거의 시작이었으며, 어머니를 따라 도북으로 들어온 입향조 할아버지의 부인이 송재(松齋) 노숙동(盧叔仝) 대감의 손자 노우영(盧友英) 공의 증손녀였으니 나는 밖으로 드러난 성은 권가이지만 결국 춘당(春塘) 박맹지(朴孟智) 선생과 송재(松齋) 노숙동(盧叔仝) 대감의 후손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옥계 노진, 사암 노관 선생의 후손들은 송재 노숙동 대감의 후손인 동시에 삼괴당 권시민 선생의 후손이기도 하다.

 

어떤 가문의 족보에 이름이 나온다는 것은 핏줄이나 혼인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족보는 규장각에 소장된 안동권씨 성화보(成化譜)인데 성화보에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선생과 동생 정여유(鄭汝裕), 아버지 정육을(鄭六乙) 공의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함양인으로서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성화보는 일두 선생이 스물일곱 살이던 1476년에 발간되었으니 일두 선생이 조선조 5현의 일인이어서 유명세를 타고 그곳에 등재된 것은 아니었다. 일두 선생의 외할머니 민씨부인의 할머니가 화원군(花原君) 권중달(權仲達) 공의 따님이었기 때문이다. 안동권씨 성화보는 양촌(陽村) 권근(權近) 선생의 아들 권제(權踶), 손자 권람(權擥), 그리고 외손자 서거정(徐居正) 선생에 의해 만들어졌다. 임진란 이후부터 우리 함양에 400년 넘게 세거해 온 대구[달성]서씨 입향조 위수(渭叟) 서현립(徐玄立) 공은 바로 서거정 선생의 현손이니 그 후손들은 양촌 권근 선생의 후손이기도 하다.

 

남계서원에는 일두 선생과 함께 개암(介庵) 강익(姜翼), 동계(桐溪) 정온(鄭蘊) 선생이 배향되어 있다. 개암 선생은 동계 선생의 외삼촌이며 동계 선생의 아버지 역양(嶧陽) 정유명(鄭惟明) 공의 처남이다. 정유명 공의 아버지이며 동계 선생의 할아버지인 정숙(鄭淑) 공은 옥계 노진 선생의 어머니 권씨부인, 남계 임희무 선생의 어머니 권씨 부인, 화계 김덕년 선생의 어머니 권씨부인과 내외종 4촌간이었으니 그 인척 혈연관계가 종횡으로 얽히고설켜 있다고 할 수 있다. 혼인을 통해 중첩된 혈연관계는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우리 함양인들 사이에 아주 흔하게 관측되는 일반적 현상이다.

 

함양인들은 이렇게 핏줄로 얽히고설켜 있는데도 자기 성씨만 자랑하고 자존자대하면서 다른 성씨들을 폄훼한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조상이나 자기 자신을 헐뜯고 깎아내리는 못난 행위가 될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은 아버지 성 하나이지만 내 몸속에 숨겨진 혈연의 가닥은 무수히 많다는 사실을 알고 겸허하게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자신의 존재를 존중하는 바른 자세이리라. 나의 유전자는 성씨로 드러난 아버지로부터만 받은 게 아니라 어머니에게서도 똑같이 받았다는 과학적 사실을 인정한다면 우리 함양인들은 서로가 더욱 존중하고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함양인(咸陽人)은 지연(地緣)과 학연(學緣)만이 아니라 혈연(血緣)으로도 긴밀하게 연계된 소중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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