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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 정일상]上求菩提 下化衆生
 
함양신문 기사입력  2019/12/02 [10:29] ⓒ 함양신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청암 정일상 시인.수필가 본지 논설위원   함양신문

위로는 진리를 추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는 뜻으로 불가(佛家)의 용어 중,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라는 말이 있다. 대승불교(大乘佛敎)의 수행 주체인 보살(菩薩)은 마땅히 수행의 목표를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에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대승불교가 크게 발전함에 따라 불교의 이상적 수행자상 역시 변모되어 왔다. 대승불교도들은 기존의 불교 수행자를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으로 지칭하고, 자신들을 보살로 지칭하였다. 보살은, 범어(梵語)로는 ‘bodhi-sattva’이고 팔리어로는 ‘bodhi-satta’라고 한다.

 

이를 한역(漢譯)해서 ‘보리살타(菩提薩埵)’라고 한다. 이 중 보리는 지혜, 깨달음, 도(道) 등을 의미하고, 살타는 중생을 뜻한다. 그래서 보리살타를 줄여 ‘보살’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니까 ‘상구보리하화중생’은 바로 이 보살 수행자가 발심해서 수행하는 목적을 상(上)과 하(下)로 구분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즉, 보살은 위로는 지혜인 보리를 추구하고, 아래로는 고통 받는 다양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수행의 목적으로 삼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불가에서 말하는 이익, 곧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에 각각 해당되는 것이다. 불법(佛法)을 수행하는 세 부류를 <성문·연각·보살>로 부른다. 이 가운데 보살은 성문과 연각과 달리 깨달음과 더불어 중생을 교화하는 일을 함께 목적으로 삼는 것이 다르다.

 

위로 보리를 추구하기 위해서 필요한 덕목은 지혜이고, 아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필요한 덕목이 자비(慈悲)이다. 이 중, 성문과 연각은 지혜 하나만 갖추는 반면, 보살은 지혜와 자비의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수행자를 가리킨다. 이런 면에서 불교에서는 성문·연각보다 보살을 더욱 훌륭한 수행자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불교(원불교)에서도 사람이 선악 간 업을 지을 때에 중생은 명예와 권리와 이욕으로써 짓고, 불보살은 신념과 의무와 자비로써 한다. 그러므로 불보살에게는 참된 명예와 권리와 이익이 돌아오게 되며, 중생은 실상 없는 명예와 권리와 이욕에 방황하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범부(凡夫)는 요구 조건만 많으므로 빚만 더 지고, 성인(聖人)은 의무 조건만 많으므로 복이 늘 흡족 하게 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신념과 의무와 자비는 ‘두두(頭頭)’이고, 명예와 권리와 이익은 ‘물물(物物)’인 것이다. 그래서 법위(法位)가 높아진다는 것은 진리계로부터 인증을 받는 다는 측면에서 축복이다. 하지만 신념과 의무와 자비가 늘어나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무척 두려운 일이다.

 

그런데 법위가 법사(法師) 이상이고 보면 여기에 가장 중요한 것이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이다. 법사는 ‘급(級)’에서 ‘위(位)’로 도약하는 불보살의 위를 말하며, 군대로 말하면 사병이 장교로 진급하는 것이고, 바둑이나 태권도 등에서는 승단(昇段)의 의미가 있다 하겠다.

 

승단의 의미는 사범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스승 사(師)자가 붙게 된다. 이것의 진정한 의미는 ‘상구보리(上求菩提)’는 끝났으니, ‘하와중생(下化衆生)’하라는 진리의 명령이다. 그런데 법위만 높으면서 ‘신념과 의무와 자비’를 다하지 못할 때, 호리(毫釐)도 틀림없는 진리의 질책이 진정 두려운 것이다.

 

그러니까 법사 이상의 성자들은 악도에 떨어지지 않을 성자의 자격증을 얻은 셈이다. 그런데 그런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때로는 아닌 모습을 하는 모습을 보면 그 과보를 어찌 받을지 여간 걱정이 드는 것이 아니다. 수행인의 삶은 상구보리 하화중생으로 사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수행인이 재색명리(財色名利)에 빠져 본원을 망각하면 어떤 과보를 받을까 이다. 수행인이란 남을 해치면 자신에게도 해가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윤리와 도덕을 존중하고 계율을 지키며 스스로 하는 일에 책임을 질줄 알고 있다. 그래서 약육강식이 판을 치는 축생이나 악업을 일삼는 지옥중생과는 다르게 살아야만 하는 것이리라.

 

 혹시라도 우리의 삶이 한 때라도 본원을 망각할까봐 언제나 노심초사하고 살아간다. 자신의 계행은 소승으로 지키고, 세상의 교화는 대승으로 하여, 소승과 대승을 병진하는 삶이 진정한 수행인의 모습이 아닐 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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