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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목 기자가 만난 사람]자랑스런 함양인, 권충현 재외향우회연합회장
“가슴 속엔 함양이 그리움과 건강한 삶의 원천으로 늘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함양신문 기사입력  2019/11/25 [10:33] ⓒ 함양신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기자는 자랑스런 함양인 릴레이 인터뷰를 위하여 함양에서 어떤 행사가 있거나 전국 각 지역향우회에서 큰 행사가 있으면 늘 달려와 함께 하는 재외함양군향우회연합회 권충현 회장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다. 자랑스런 함양인이라는 말이 부담스럽다면서도 평소처럼 흔쾌히 응해주었다.

 

“회장님 반갑습니다. 고향 함양에 대해 늘 관심 가지고 응원해 주시고 오늘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먼저 회장님께 고향 함양은 어떤 곳인지 듣고 싶습니다.” 

“어머니란 말과 고향이란 말은 듣기만 해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말입니다. 어린 날 고향에서 십여 년 정도 살고 타향에서 반백 년 넘게 살아왔는데도 가슴 속엔 함양이 그리움과 건강한 삶의 원천으로 늘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함양은 내게 있어 그런 곳입니다.” 

 

-고향과 부모님들에 대한 이야기부터 좀 해주시죠.

고향은 수동면 도북입니다. 아버지는 휘자를 삼()자 복()자로 쓰셨고, 어머니는 매운당 이조년(李兆年) 선생의 후손으로 수()자 경()자를 쓰셨습니다. 아버지는 대목이셨는데 춘수당 같은 정자와 여러 문중 재실도 지으셨지만 수동, 안의, 서상, 거창 등지에서 전쟁 후의 폐허 위에 사람들이 살아갈 집을 많이 지으셨고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집을 짓듯이 우리 형제들 교육에 남다른 열정을 쏟으셨습니다. 어려서 누가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저는 늘 우리 아버지라고 말했던 게 기억납니다. 농사를 병행하시면서 6남매를 기르셨는데 저는 도북국민학교를 나와 함양중학교를 다녔습니다. 하루 왕복 60리 길을 오가며 공부를 했죠. 우리 때는 그렇게라도 학교에 다니는 것이 축복이었습니다. 덕분에 풀 베고 소먹이고 나무하고 농사 거들면서 틈틈이 공부하던 산골 소년이 대도시에 나가 평생 교육자로 살아왔습니다.”

 

-가족들은 어떻게 되시나요?

교직생활을 하며 집안 살림과 자식 교육을 도맡아 해준 안사람(김선화)과 아들(), (퀴리) 남매가 있는데 모두 성가하여 나름대로 제 역할을 하며 잘 살고 있습니다. 요즘은 손주들 재롱 보는 게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

 

-삶의 역정을 잠시 들어보고 싶습니다.

경북대학교 사범대학을 나와서 교육자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우리 교직에는 교원의 전문성 향상을 위해 봉급을 주면서 한국교원대학원에 보내어 2년간 공부만 시키는 특별한 제도가 있는데 그 제도가 생긴 다음 첫 번째 학생으로 뽑혀 공부한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교원대학교가 생기고 발급한 제1호 학위가 제 석사학위였죠. 그 후 한국교원대학교에서 박사학위까지 마쳤습니다.”

 

-교직자로 살아오셨다고 하셨는데 조금 더 말씀해주시죠.

처음 발령받은 곳은 경북 울진의 중학교였습니다. 대구로 들어와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한국교원대학교에서 공부하고는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그 뒤에 대구광역시교육청의 장학사가 되고 교감, 교육연구관, 장학관, 교장, 교육장 등을 거쳐 정년 퇴임을 했습니다. 교육장으로 봉직한 대구동부교육청은 대구광역시의 중구, 수성구, 동구 3개 구의 학교 교육을 뒷받침하는 곳이었는데 지역 인구가 88만 명이나 되는 큰 교육청이었습니다. 국회의원이 다섯 명, 구청장과 경찰서장이 세 명씩이나 있는 교육청이었죠. 함양 산골 소년이 출세했죠. 이게 모두 어린 날 산에 올라 나무하고 풀 베고 소먹이며 기른 뚝심 덕분이요 육십 리 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녔던 배움 덕분입니다.”

 

-교육 공무원으로서 이룩한 가장 큰 업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교직자로서 업적을 이야기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교직 생활을 하면서 학생들과 늘 함께해 온 것은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학교에 남아 공부를 하는 한 나도 함께 남아 있었으니까요. 학생들과 늘 함께 공부했더니 석사도 되고 박사도 되더군요. 그래서 나는 내 박사학위는 우리 학생들이 만들어준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학생들과 함께하느라 정작 우리 집 아이들과는 함께 하지 못했어요. 아들과 딸에게는 미안하고 아이들을 키우느라 노후에 고생하신 어머니와 교직 생활을 하면서 힘들었을 텐데도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 해준 안사람에게 감사할 뿐입니다. 아버지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도 잘 자라준 아들과 딸이 고맙고 대견해요.”

 

-5회 재외함양군향우회연합회 한마음 대축제 때 어떤 행사를 기획하고 추진했나요?

금년도 재외향우회엽합회 한마음 축제는 용추계곡 단풍길 걷기 행사로 진행했습니다. 우리 함양은 어느 골짝, 어느 산을 가도 다 좋은 곳인데 올해는 용추계곡 단풍길을 걸으며 건강도 챙기고 친목도 도모할 수 있도록 기획했습니다. 특히 사평분교터에 설치된 반환점에서는 참가자 전원에게 산삼 한 뿌리씩을 나눠줌으로써 2020 산삼엑스포 개최를 널리 홍보할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재외향우회연합회에서는 2020년 산삼항노화엑스포를 어떻게 준비하고 계십니까?

내년 산삼 엑스포의 성공 여부는 얼마나 많은 외지방문객을 유치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우리 연합회에서는 엑스포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각 지역향우회가 지역별 엑스포 홍보센터 역할을 하도록 협조해 나갈 계획입니다. 지금도 지역 회장님들이 엑스포 명예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데 향우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홍보대사 역할을 하도록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세계문화유산 남계서원도 함께 홍보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함양군민께 한 말씀 해주시죠.

처음 말했듯이 고향은 어머니라는 말과 함께 언제 들어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말입니다. 우리 출향인들은 외지에서 살고 있으나 마음속엔 항상 고향 함양이 있습니다. 좋은 뉴스로 함양이 나오면 자랑스럽고 나쁜 뉴스로 함양이 나오면 내 잘못인 양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함양에서 좋은 소식이 많이 전해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출향인들도 함양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어디에 살든 우리는 모두 함양인입니다. 우리 모두 함양의 발전과 함양인의 행복을 위해 함께 노력합시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십시오

 

정상목기자mogsang11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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