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암 소재우 본지노설위원 교욱삼락고문 함양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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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듣기 싫은 거북한 말을 나는 가볍게 내 뱉아 바닷가 모래위에 글씨를 쓰듯 말하지만, 듣는 사람은 바위에 글씨를 새기듯 들을 때가 있다고 한다. 말은 그 사람의 속마음이며 밖에 풍기는 인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 부터 말조심하라는 경구의 시조가 있어 의미를 생각해본다.
“말하기 좋다하고 남의 말 말을 것이 / 남의 말 내가 하면 남도 내말 하는 것 / 말로서 말 많으니 말 말을가 하노라.” 청구영언
“세상 사람들이 입들만 성하여서 / 제 허물 전혀 있고 남의 흉보는 괴야 / 남의 흉 보거라 말고 제 허물을 고치고자.” 청구영언
말을 잘못하면 세치도 안 되는 혀가 상대에겐 평생을 지울 수 없는 무서운 핵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남에게 충고의 말을 할 때도 체로 그른 듯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류역사에 언어가 생긴 이래 총칼에 맞아 죽은 사람보다 사람의 혀끝에 맞아 죽은 사람이 더 많다 한다. 나는 지나가는 말로 아무 생각 없이 말을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사람은 두고두고 못 잊을 때가 있다.
요즈음 정치권과 시회에는 말싸움이 한창이다. 거짓말을 참 말이라 하니 행위에 대한 잘 잘못을 따지다 보니 서로 이기려 싸움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정치판은 개 싸움이라 했다.
우리가 ‘들은 귀는 천년이요, 말한 입은 사흘이다.’ 라는 속담이 바로 그 뜻이다. 악담(惡談)을 들은 귀는 천년동안 기억하지만 악담을 말한 사람의 입은 사흘도 못가서 잊어버리고 만다. 내가 한번 말한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불교에서 십악(十惡)을 말하는데 그중 말로 짓는 네 가지 악(惡)이 있으니 거짓말 하는 망어(妄語), 이간질 하는 양설(兩舌), 겉과 속이 다른 기어(綺語), 남에게 나쁜 말을 하는 악구(惡口) 네 가지이다. 그래서 말로 짓는 구업(口業)을 조심해야 한다.
나에게 이로운 말은 쉽게 잊어버리지만 상대가 내 가슴에 비수로 꽂은 서운한 말은 저승에 갈 때도 가슴에 싸가지고 가게 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는 속담처럼 내가 한 말은 곧 나의 인격이고 품위이다. 요즈음 언론 특히 유티브이 등에서 막말을 많이 하다가 지탄 받으면 내리고 한다. 옛날에는 동네 이웃이지만 지금은 핸드폰 등 전파를 타는 전국상대라 더욱 조심해서 글 쓰고 말해야 한다.
입에는 꿀을 담고 뱃속에는 칼을 지녔다는 구밀복검(口蜜腹劍)이라는 말이 있는데 친절한 듯 좋은 말만 하면서 음험한 생각을 가진다는 뜻으로 표리가 다른 말을 경계하라는 성어이니 깊이 새겨야 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는 속담처럼 내가 한 말은 나의 인격이고 품위입니다. 얼굴이 안 보이는 인터넷 문화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이 지켜야 할 최고의 에티켓이 고운 말이다.
해몽도 말하기에 달렸다. 옛날 유생 세 사람이 과거 시험을 보려 할 때 한사람은 거울이 땅에 떨어지는 꿈을 꾸었고, 한사람은 허수아비가 문짝에 걸린 꿈을 꾸었고, 한사람은 바람이 불어 꽃이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 이들은 해몽가의 집을 찾았다. 때마침 해몽가는 없고 그의 아들이 집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 아들에게 해몽을 의뢰했다.
“모두가 상서롭지 못한 것이니 소원을 이루지 못할 것이요 했다. 그래서 실망하는 동안 해몽가 주인 왔다. 아들의 잘못을 꾸짖고 이들의 꿈을 풀어 주었다. ”거울이 땅에 떨어지면 어찌 소리가 나지 않으며 허수아비가 걸렸는데 어찌 사람이 올려 보지 않으며 꽃이 떨어졌는데 어찌 열매를 맺지 않으리오.“ 상스러운 꿈이니 세분 모두 소원을 이루어 대성 할 것이라 했다.
우리가 좋은 말 따뜻한 말 한마디는 누군가의 가슴에 씨앗처럼 떨어져 뜻밖의 시간에 위로와 용기에 의해 싹이 나면 향기 나는 꽃이 피게 될 것이다. 우리 혀를 잘 단속하여 비좁은 인터넷 공간에서 만나면 언제 웃을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아름다운 문화를 만들어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