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유공자 조경제 18대조(祖) 고려 충신 덕곡 조승숙 선생의 교수정과 사당전경 © 함양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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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지난 8월 15일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아 지난 1919년 4월 경기 화성시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징역 12년을 받은 이봉구(李鳳九) 선생과 광주학생운동의 도화선이 된 박기옥(朴己玉) 선생 등 178명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포상되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49명(독립장 1, 애국장 8, 애족장 40), 건국포장 28명, 대통령표창 101명으로, 이중 생존 애국지사는 1명(백운호, 89세)이며, 여성이 10명이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함양군 지곡면 마산리 계곡마을 출신으로 함안조(趙)씨 덕곡선생 18代 손 고(故) 조경제 선생이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이하여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어 손녀 조춘자씨가 대통령표창 수여받았다.
고(故) 조경제 선생은 기미 3.1독립운동당시 지곡면 주암마을 숭양정(崇陽亭)에서 권도용선생 문하에 수학(修學)하던 중 일제의 횡포가 날로 심해지자 항일 의욕이 치솟아 국가 없는 국민이 존재 할 수 없고 구국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굳은 의지로 서평마을 임채상(林采相), 주암마을 정우상(鄭右相), 정재천(鄭在天)등과 누차 결의 끝에 1919년 3월 20일 안의 시장일(市場日)을 택하여 천여명을 운집시켜 일제 강제 점령의 부당성과 일본 헌병의 만행을 규탄 일인송하(日人松下) 상점이 모든 상권의 점령 등 더욱 분개하여 숨겨운 태극기를 꺼내어 만세를 선창함에 일본 헌병이 공포를 쏘우며 즉석해서 체포, 수사하여 주도자로 판명되어 혹독한 고문과 전신에 상처를 입고 국가보안법의 죄로 진주형무소에 투옥하여 만기출소 하였으나 사회활동은 불가능하였고 학업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항상 병상에서도 대한독립을 외치고 8.15광복절을 맞이하였으나 번영된 조국의 참 모습을 보지 못한 채 1949년 3월 49세의 일기로 서거했다.
아울러 이번 포상이 있기까지는 장남 고(故)조래희씨의 오랫동안 부단한 노력이 있었으며 손녀 사위 김진한씨의 도움이 있었다.
한편,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은 분은 1949년 포상이 시작된 이래 건국훈장 11,014명, 건국포장 1,308명, 대통령표창 3,367명 등 총 15,689명(여성 444명)에 이른다.
이정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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