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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 순례기]♚ 옛 비단길을 새 비단길로 가다 Ⅳ♚
대장경을 번역한 구마라십과 라십사
 
함양신문 기사입력  2019/08/09 [16:06] ⓒ 함양신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송암 소재우  금선사 거사  본지논설위원   © 함양신문

호텔식을 먹고 짐을 챙겨 어제의 버스로 무위 시내 중심지에 있는 구마라습사와 탑이 있는 절에 갔다. 주차장에 서 보니 거창한 일주문은 새로 건축한 것 같고 들어가 보니 대웅전과 장경각 요사채 등 규모가 크게 보였다. 원주(圓柱) 대탑을 보려고 대웅전 뒤로 가보았다. 탑은 넓은 기단위에 6각형 기둥 같고 13층인 것 같다.
 구마라가 임종 시 “화장 할 때 내 혀가 타지 않으면 불경을 제대로 번역한 것이라 했다.”한다. 혀가 불타지 않아 그 혀를 이탑에모시어 혀 바닥 사리탑이라 한다. 구마라즙은 장액부근에 여광이 세웠던 나라에 15년 머물면서 경장, (經藏), 율장(律藏), 논장(論藏), 삼장을 번역해 중국 불교에 많은 영향을 끼쳐서 그 공으로 사리탑을 세운 것이다. 그가 번역한 불경이 우리나라에도 들어 왔다. 절의 규모로 보아 대사찰이다. 그의 진신 사리탑은 서안의 초당사에 있다. 그곳에서 왕명으로 번역을 했기 때문이다. 그의 행적은 다음 내력을 참고 하시길.

 * 구마라습(鳩摩羅什) 내력
 중국 최대 불경 번역가인 구마라습(鳩摩羅什, Kumarajiva, 344~413)은 구자국(龜玆國) 사람이다. ‘구마라’는 성이고 ‘집(什)’은 이름이다. 또 구마라기바라 하는데 아버지 구마라염과 어머니 기바를 합한 이름이다. <양고승전>에는 413년 70세에 대사(大寺)에서 입적했다 하였다.
구마라즙은 인도학 베다학에 능하며 삼장법사(三藏法師)로서 서안 초당사에서 불경을 번역한 위대한 번역가이다. 산크리스트(인도범어)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한 4대 역경가(譯經家) 중 한분이며 중국에 불교사상을 전파한 큰 공로자다.
 라집의 아버지는 인도 사람으로 재상가문을 누린 집안이었으나 출가 후 구자(龜玆)나라로 가서 국사(國師)가 되었다. 왕의 여동생 기바와 결혼해 구마라집을 낳았다. 라집은 중국에서 소승불교를 배우다가 대승불교로 개종했다. 인도에 유학 가서 두루 선지식을 참례하여 박식했고 기억력이 뛰어나 인도에서 명성이 자자했다. 라집은 7세에 출가해 경을 배워 매일 천 계송을 암송하고 9세에 출가한 어머니 따라 계빈으로 가서 이 나라왕의 동생으로 대학자인 반두달라의 제자가 되었다.
 그의 명성을 들은 왕이 외도 논사와 논쟁을 시켰는데 이기자 존경했다. 12세에 어머니 따라 계빈을 떠나 구자로 갔다.
 아비담, 증일 아함경을 독송해 뜻을 통달했다. 다시 대승에 정통한 스승 수리야소마를 스승으로 해 대승에 눈을 떴다. 구자왕은 은숙국에 가서 구마라집을 모셔왔다. 인도로 가려는 어머니에게 나는 남아서 사람을 구제 하겠다 결의하고 구자국 신사에서 ‘광반야경’을 공부해 대승경전에 통달했다. 구자국왕 딸과 강요에 의해 결혼 했다. 라집의 소승교 스승이 찾아와 라집의 대승교학이 심원함을 알고 스승으로 존경했고 라집은 대승학자로 중국에 널리 알려졌다.
 당시 관중에 세력을 떨친 티벳족 전진왕 부견이 그의 명성을 듣고 382년에 장군 여광에게 구자를 정벌하고 구마라라집을 데려오라 하였다. 라집을 데려 오던 중 부견이 요나라 장수에게 살해 되고 전진이 멸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양주를 평정하고 후 양국을 건설하였다. 라집도 그곳에 머물렀으나 여광은 불교신자가 아니라 그곳 흔적이 없다. 요흥이 후양을 토벌하고 라집을 장안으로 맞은 때가 401년12월20일이다. 요흥은 부견의 뒤를 이어 라집을 국사로 대접 했다.  
 402년 정월부터 소요원의 서명각에서 도생 승조 도웅 승엄 등과 불경을 번역 하였다. 406년 장안대사(長安大寺)로 옮겨 번역을 계속 했다. 10여 년간 한역(漢譯) 강설 등을 하면서 수천 명을 교화 하였다. 413년 4월 13일 장안의 초당사에서 입적 했다. 입적 시 그는 내가 잘못 번역하였으면 혀가 다 탈것이라 했는데 타지 않아 제대로 되었다고 보고 그 혀를 무위의 구마라사 13층탑에 모셨다.
 요진시대에는 왕실의 지원 하에 불교가 흥성하였다. 그래서 많은 서역 승려들이 중국으로 들어와 역경에 종사했다. 그중에 외국어에 능하고 불교에 정통한 구마라즙이 간결하고 유창한 번역으로 중국 역경사상(譯經思想) 새 획을 긋고 제자에게 불교의 진수를 전해 불교의 새 장을 열었다. 그가 번역한 책은 묘법연화경, 아미타경 등 경율 74부 380권이상이라 한다. 우리나라 불경역사에도 영향이 컸다. 다음 해장사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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