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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 순례기 3] 옛 비단길을 새 비단길로 찾아 가다 Ⅲ
☞ 황하 석림의 병령사 석굴사원 ☜
 
함양신문 기사입력  2019/08/05 [11:36] ⓒ 함양신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송암 소재우 금선사 포교사  © 함양신문

  * 석굴 사원 병령사(炳靈寺)의 환경
 황하강 상류 연안은 사막 지대이지만 강물로 인해 농토와 마을이 있어 서역 대상들이 머물다 가는 오아시스 역할을 한다. 우리도 황하강을 막은 유가협(劉家峽,류자사) 수력 발전소 댐 선착장에 도착했다.   바다 같은 댐은 배로 주변의 석림(石林) 경관을 관광하기위한 방법으로 이용했다. 보트를 타고 40분가야 해서 5~6명씩 구명대를 입고 탔는데 스님과 같이 타고 가면서 설악산 같은 돌산 경치를 구경했다. 설명에 의하면 콘크리트 댐 높이가 147m 이고 댐 길이가 213m라 한다. 댐 저수지 길이는65km이며 저수 면적은 137㎢이다. 1969년 1호기가 발전 해 현재는 5호기 까지 122만kw 전력을 생산 한다. 가물 때는 태양광 발전을 하여 보충한단다. 난주의 공업지대와 서북지역 도시에 송전 한다. 
 여기서 50km 가면 병령사 계곡에 닫는데 40분 걸린다. 주위의 경관과 산은 나무 없는 무릉도원이 아닌가 한다. 주위가 황토 산이라 강이 누런데 주변에 나무가 심어져 있다. 사람이 심었고 댐의 물을 퍼 올려 위에서 살포기로 분수해 키운다 한다. 댐주변 녹화를 위해서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 같이 어리석은 사람이 대대로 산을 옮기듯 강 주변을 녹화 한다는 생각이 중국인답다. 40분 지나니 멀리 보이는 절벽에 굴들이 보인다. 선착장에 내렸다. 길 따라 병령사 일주문 쪽으로 정회장과 같이 200m를 걸가면서 사진 찍고 건너편 산을 보니 금강산 본 것 같다. 올라가면서 왼쪽을 보니 굴마다 번호가 있고 그 속에 벽화나 어설픈 옛 불상들이 굴을 지붕으로 삼고 있다. 퇴색이 된 것도 많다. 공산국가라 스님들은 보이지 않고 관리인 만 있다.

 * 병령사 내력 : 더 알기
 난주의 적석산(積石山)에 위치한 불교 석굴 사원인 병령사(炳靈寺)는 황하 지류의 기슭에 석굴이 약 2km에 늘어서 있다. ‘병령’이란 티베트어를 음역한 말로 ‘십만부처(十萬佛)’이란 뜻인데 천불동(千佛洞)과 같은 뜻이다. 석굴의 연대는 16국 시대인 420년 서진 시대부터 명나라 때 까지 조성되었다. 용흥사(龍興寺)로 불렀던 당나라 때 석굴이 많이 지어졌다. 송 대에는 토번의 침입에 대처해 평안을 위한 불공을 많이 드린 곳이다. 불상공양과 수리가 계속 되었고 원나라 이후는 라마불교가 유입되어 라마식 불상이 상부에 조각 되었다.
 약 1500년간 183개의 석굴과 776구의 불상이 조성되었다. 주석불이 있는 하사 산 벽에 현암좌불(懸巖座佛)이 시야에 들어온다. 대표 불상인 171굴의 이 대불은 27m높이인데 당나라 때에 조성되었는데 상반신은 천연석주를 이용 했고 하반신은 찰흙을 이용해 만들었다. 낙양 대불, 돈황 대불과 중국 3대 굴 대 불상이다. 홍사암 바위산이 황토 퇴적층 사암이라 조각하기 좋았다.
  병령사 석굴 중 최대 규모는 169굴의 불상 군이며 초창기 년대 것으로 이 절의 역사를 아는 기준이라 한다. 452년 문성제가 불교 중흥을 일으켰고 그 이후 발전했다. 수, 당나라 때 발전하다가 토번의 침략으로 파괴와 보수가 반복 되었으나 청나라 때 많이 파손되었다. 1951년 조사와 연구가 진행 되고 복원작업이 이루어 졌다. 169번 굴의‘무량수불’(4~5세기)은 초기 불교를 믿는 중국인들이 서방에 극락정토가 있다는 신앙을 엿 볼 수 있다. 이 길로 천추국(인도)에서 불경을 가져 오니 그런 것 아닌가 한다.
 지금은 관광을 위해 석굴을 깨끗이 수리해 자비스러운 불상이 보기 좋다. 그래서 여인들이 절을 하며 뭔가를 기원하는 것 같다. 대불 앞에 누각이 있었으나 청대에 불탔다 한다. 대불 좌우의 석불이 장관이다. 황하를 이용해 중국과 서역을 오가는 많은 승려들의 중간 기착지로 수행하던 곳이다. 그들이 있었기에 많은 불사가 이루어졌다고 본다. 이곳 아래에 와불(臥佛)이 있었는데 댐의 물이 차오르자 다른 곳으로 옮겨 보관중이란다. 계곡 위쪽은 상사의 굴이 2km까지 이어진다. 다채로운 보살 등의 벽화가 남아 있다. 너무 많아 뭐가 뭔지 아리송하다.
 1970년부터 개방이 되었다. 우리 일행은 계곡을 건너 반대편 소로로 내려가면서 이곳을 관리하는 조그만 절을 둘러보면서 건너편 대불과 많은 석굴을 보니 장관이다. 공산 국가라 승려는 없고 관리하는 경비원이 더우니 웃옷을 벗고 책을 보는 장면을 찍으니 웃었다. 1500년간을 불교를 지킨 황하 상류 병령사 일 대는 중국 문명의 발상지로 손색이 없다. 다시 선착장으로 되 돌아와 배를 타고 오면서 댐 주위의 경관을 구경하였다. 물도 누렇고 산도 삭막한 모래 산이며 들도 별로 없는데 2000년의 역사를 이어온 이곳 주민들이 대단하다 여기는 사이에 선착 부두에 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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