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기고 > 청암 정일상
[청암 정일상] 제행무상(諸行無常)
청암 정일상 시인.수필가 본지 논설위원
 
함양신문 기사입력  2018/09/17 [16:15] ⓒ 함양신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청암 정일상 시인.수필가 본지 논설위원   © 함양신문

 

우주 만물은 항상 생사와 인과가 끊임없이 윤회하므로 한 모양으로 머물러 있지 않다는 뜻으로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 무상(無常) 또는 비상(非常)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멸(生滅)하여 영원하지 않은 것을 말함이다.

 불가(佛家)에서는 일반적으로 제행무상이라는 명제를 무상으로 설명하며, 제행무상은 불교의 근본교의를 나타내는 삼법인(三法印)의 하나로, 모든 것은 생멸변화(生滅變化)하여 변천해가며 잠시도 같은 상태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꿈이나 환영이나 허깨비처럼 실체가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 이 현실세계의 모든 것은 매순간마다 생멸(生滅)하고, 변화하고 있으며, 거기에는 항상 불변(恒常不變)한 것은 단 하나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의 실상(實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일체가 무상한데 사람들은 상()을 바라며, 거기에 모순이 있고 고()가 따르는 것이다. 무상은 바로 고의 전제이며, 무상한 까닭에 고()인 것이다.

 또 현실을 그와 같이 인식하는 것을 무상관(無常觀)이라고 하며, 무상의 덧없음은 몽환포영로전(夢幻泡影露電)' 즉 꿈·환상·물거품·그림자·이슬·번개에 비유되어 불가 적 인생관의 특색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무상관은 단순히 비관적인 덧없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며, 어떤 상()에 대하여 비관하거나 기뻐하는 것 자체가 상이며, 그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뜻하는 것이다.

 무상하기 때문에 인간은 지위나 명예에 집착하는 탐욕을 버리고 하루하루의 소중한 생명을 함부로 함이 없이 수행에 정진하고 정진 또 진노력(精進努力)하려는 정신적인 결의가 생겨나게 되며, 이러한 것이 무상관의 참된 뜻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 최고 권력자들은 거의 다 이런 제행무상의 진리를 알고도 모르는지 모두 권력에 집착하여 파멸의 길로 접어드는 것일까 하고 생각해 본다. 권력자들이 나락에 떨어질 때 재판부가 말하기를 국민들이 위임한 권력을 개인적으로 남용했다고 준엄하게 꾸짖었다. 이 모든 것이 과도한 집착에 기인한 것이다. 집착하면 고통이 생기기 마련인 것이다.

이에 대한 좋은 처방이 있지 않을 까 생각해 본다그 원인으로는 먼저 과도한 집착이라 여긴다. 그래서 권력자는 집착의 원인이 되는 대상과 거리를 둬야 하는 것이다. 재색명리(財色名利)에 집착하고 있다면, 집착의 대상에 가까워질수록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집착의 대상과 자신 사이에 물리적인 거리를 두면 정신적인 거리도 생기게 된다. 처음에는 쉽지 않지만, 시간이 흐르면 집착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집착하고 있는 대상에 관심을 주지 않는 것이다. 집착하고 있는 대상에 관심을 주면 습관을 고치기 어려워진다. 집착을 끊어 버리기 위해서는 우선 집착하고 있는 것과 멀어져야 한다.

 또한 집착하는 대상과 관련된 생각 대신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다. “집착하고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다른 것을 생각해 보라는 이야기는 쉬워 보일 수 있지만 무척 어렵다. 집착을 끊고 인생의 다른 것들을 즐기려면 왜 그 집착을 극복하고 싶은지 기억해 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다. 망상(妄想)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집착하고 있는 대상에 대해 몇 시간씩 생각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수 있다. 마음 챙김 훈련을 통해 집착을 멈춰 보는 것이다. 마음 챙김 훈련을 하면 과거 또는 미래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지금 이 순간에 최대한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불의(不義)와 과욕으로 구한 부귀영화는 지탄의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오래가지도 못하고 인생을 망치는 재앙을 불러 온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부귀를 정도(正道)로서 구하지 않고 부정(不正)으로 구하려 하기 때문에 수많은 정·재계 인사들이 줄줄이 낙마를 하고 엮여 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수도인(修道人)이 구하는 바는 마음을 알아서 마음의 자유를 얻는 것이며, 생사(生死)의 원리를 알아서 생사를 초월하자는 것이다. 죄 복(罪福)의 이치를 알아서 죄 복을 임의(任意)로 하자는 것인 동시에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 어쩌자고 그 덧없는 것들에 죽기 살기로 매달려 인생을 나락(奈落)으로 떨어뜨리는 것일까 하고 생각한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함양신문
 
 
광고
광고

화과원

가장 많이 읽은 기사
지리산천왕축제, 강력한 희망메시지를 전하다 / 함양신문
민주평통 함양군협의회 ‘주민과 함께하는 북한음식 체험’ / 함양신문
함양군, 2024년 상반기 어린이통학버스 합동점검 실시 / 함양신문
[한만수 풍수전문가] 망하는 터 / 함양신문
함양군, 공동상표 농산물 포장재 지원사업 설명회 개최 / 함양신문
함양 향토기업고담조경·㈜신원 미래 세대를 위한 장학금 기탁 / 함양신문
함양소방서, 경남 일반인 심폐소생술 대회서 연꽃어린이집 3위 입상! / 함양신문
수동농협 양파 붐스프레이어 현장 시연회 개최 / 함양신문
함양도서관, 취약계층 운영기관과 업무협약(MOU) 체결 / 함양신문
서상우체국 4월 22일부터 신 청사에서 업무개시 / 함양신문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