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녀석들이 우리 집에 오기 전에 미리 보내온 생활계획이란 게 있었다.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고 했다. 비닐을 전혀 쓰지 않겠다면서 올 때도 샌들이나 목장갑, 속옷 등을 보자기나 천 가방에 담아 오겠다고 했다. 졸저 ‘똥꽃’과 ‘소농은 혁명이다’를 읽고 오겠다고도 했다. 참으로 기특했다.
그렇다. 도시에서 나서 도시에서 자란 이 청년들이 짧은 기간일망정 자연과 함께 생활을 해 보겠다면 가장 먼저 인공물이나 화학제품과 멀어지는 것이다. 전자·전기 제품을 멀리하고 가공식품도 피해야 한다. 고기와 술은 기운을 탁하게 하므로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 불편하고 더딘 하루를 지내고 몸이 고단한 생활을 선택해야 한다. 자연스러운 삶에 다른 선택이란 없다. 자연과 사람 사이에 놓여 있는 각종 시설물과 문명의 이기들을 치워내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결정을 환영할 수밖엔.
스마트폰은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어 와서 각자 시간을 정해서 제한적으로 쓰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20대 초중반의 젊은 녀남 대학생들이 스마트폰을 못 쓰게 한다는 것은 소경에게서 지팡이를 뺏는 것과 같은지라 그렇게 했다.
꽃을 발견하면 ‘모야’라는 꽃 이름 찾기 앱을 구동하는 게 아니라 유심히 관찰해서 내 서가의 자료들을 찾아보게 했다. 마지막 날에 새벽 2시 넘게 농장 뒤편에서 모닥불 놀이를 하면서도 술 한 방울 없이 신명 나게 잘 놀았다.
비가 오면 실내에서 요가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지짐을 구워 먹고, 날이 개면 동네 농가를 찾아가 일손을 도왔다. 어느 날 밤은 불을 다 끄고 선문답을 이어가는 놀이도 했다. 3박 4일을 간단히 정리하면, 일하고, 공부하고, 이웃 돕고, 기도하고, 놀이하는 시간이었다.
기도식은 매일 새벽 6시와 저녁 9시에 했다. 정화수 한 그릇 떠놓고 명상을 하고 경전을 읽었다. 나는 대학생들의 자연생태·농촌체험 요청을 받고 농민회에서 하는 농활과는 다르게 설계했다. 자연을 신처럼 경외하며 깊이 교감하는 것이 첫 번째 원칙이라면 두 번째 원칙은 완벽한 자유였다. 뭐든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해 보는 기간이 되도록 했다. 다만, 미리 계획을 세워서 자신과 굳게 약속을 맺고 진행하게 했다. 계획도 마음대로 고칠 수는 있으나 자기 자신을 온전히 설득시키는 것이 먼저였다.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는 맑은 요청에 따르는 날들이 되도록 했다.
나 스스로 정한 원칙도 있었다. 학생들이 묻지 않으면 먼저 말하지 않고, 부르지 않으면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흙이 잔뜩 묻은 호미를 그냥 팽개쳐도 잔소리를 하지 않았고 남은 음식물과 일반 쓰레기가 섞여도 모른 척했다. 그런데 오래가지 않았다. 이틀이 지난 뒤부터는 누가 그렇게 하자고 했는지 농기구는 깨끗이 물에 씻어 걸리기 시작했고 남은 음식물은 따로 모아져서 거름 자리에 묻혔다.
"화장실 물에 쓸려가는 내 똥이 아깝더라."
마지막 시간. 소감 나누기 시간에 한 대학생이 한 말이다. 우리 집에 있는 그야말로 '밥이 똥 되고 똥이 밥 되는' 과학적인(?) 생태뒷간을 쓰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또 한 대학생은 "‘빈 그릇 운동’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라고 했다. 내가 밥을 먹고 나서 마지막에 상추나 김치 조각 하나로 밥그릇과 국그릇에 묻은 고춧가루 하나까지 닦아 먹는 걸 보고는 밥을 안 남기는 게 '빈 그릇 운동'으로 알았는데 양념과 국물까지도 '음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감자 캐던 호미를 씻지 않고 그냥 걸어두면 녹이 슨다는 것을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는 학생도 모른다. 식품영양학을 전공해도 '빈 그릇 운동'을 저절로 알 수는 없다. 믿음과 정성으로 배우고 몸과 땀으로 익히는 사람만이 알 수 있다.
해월 선생의 가르침인 만사지식일완(萬事知食一碗)의 <밥 한 그릇의 이치>라는 주제어를 가지고 왔던 이 천도교 대학생들이 또 오고 싶다고 했다.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