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암 정일상 시인.수필가 본지 논설위원 © 함양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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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寺)에 가면 신도나 스님들이 염불(念佛)을 드린다. 우리 불가(佛家)에 ‘염불수행법’이 있는데, 염불(念佛)이란 아주 간단하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을 일심으로 외우기만 하면 되는 수행법이다. 여기서 ‘나무(南無)’는 귀의(歸依)한다는 뜻이고, 아미타불(阿彌陀佛)은 서방정토에 머물면서 중생을 극락으로 이끈다는 부처를 말함이다. 그러니까 염불수행은 아미타불에 의지하여 천만 가지로 흩어 진 정신을 일념으로 만드는 공부법이다.
<나무아미타불>의 뜻을 새겨 보면 이렇다. ‘노느니 염불’이라는 우리 속담이 있다. 염불이나 기도 같은 것은 당장에 큰 이익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꾸준히 하다보면 조금씩 마음이 선(善)해지게 되고, 마음에 힘을 얻어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장아함경(長阿含經)》에서는 불교 수행법 가운데 하나인 염불은 부처의 상호(相好)를 생각하여 관(觀)하거나 부처의 명호(名號)를 부르는 것으로, 궁극 목적은 번뇌를 버리고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데 있으며, 죽은 뒤에 부처의 정토(淨土)에 왕생(往生)한다고 되어있다.
염불은 종교적인 의식으로 염불수행의 궁극 목적은 번뇌를 버리고 열반에 들게 하는 데 있으며,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선 수행(禪修行)의 난해함보다는 쉬운 염불 쪽이 수행의 방법으로 더 많이 시행되고 있다 하겠다.
우리의 마음은 본래 청정한 불체(佛體)이다. 그런데 무명(無明)의 번뇌가 덮여서 ‘아미타불(阿彌陀佛)’이 나타나지 못하는 것뿐이다. 따라서 심불(心佛)의 입장에서 내 몸이 곧 정토이며, 내 마음이 곧 아미타불이라고 관하여, 자기 마음속의 부처를 염(念)하는 것이 염불이다.
이 염불수행에는 세 가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한다.
첫째, 지성심(至誠心)이다. 지극정성으로 신명(身命)을 다 바쳐서 부처를 믿고 의지하며, 성실한 마음으로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둘째, 심신(深信)이다. 부처의 본원(本願)을 깊이 믿고 아미타불의 제도(濟度)를 받기를 원하는 마음이다.
셋째, 회향발원심(廻向發願心)이다. 자기가 쌓은 공덕이 모든 중생에게 베풀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모든 선근(善根)을 극락세계로 회향하여 극락왕생을 구하는 마음이다.
이 세 가지 마음을 가지고 염불하면 반드시 인격완성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염불을 권장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서 염불하는 자에게 베풀어지는 각종 이익이 등장한다. 이 현세에서 모든 재난이 소멸되고 병이 없어지며 수명이 연장 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가정에는 경사스러운 좋은 일들이 생겨나고 사계절 내내 편안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죽음에 임할 때는 ‘아미타불’이 친히 서방 극락세계에 인도해 주며, 부처를 뵙고 법을 들으며 영원히 즐거움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원래 생멸(生滅)이 없다. 그래서 곧 무량수(無量壽)이며, 그러므로 염불하는 사람이 먼저 이 이치를 알아서 생멸 없는 각자의 마음에 근본하고 거래(去來)가 없는 한 생각을 대중하여, 천만 가지로 흩어지는 정신을 오직 미타일념(彌陀一念)에 그치는 것이다. 그러면 순역경계(順逆境界)에 흔들리는 마음이 무위안락(無爲安樂)의 지경에 돌아오게 되고, 이것이 참다운 염불공부가 되는 것이다.
이 염불수행을 오래오래 하고 보면 몇 가지 염불공덕이 생겨난다.
1. 염불을 오래 하다보면 자연히 염불삼매를 얻어 능히 극락을 수용할 수 있다.
2. 염불하는 사람이 항상 환경을 관찰하고 각자의 심경을 대조하여, 때에 맞게 운용하면 그 공부가 연속되어 쉽게 큰 정력(定力)을 얻게 되는 이다.
3. 만일 번뇌가 과중한 사람은 먼저 염불로써 그 산란한 정신을 대처하면, 그 원적(圓寂)의 진경(眞境)에 들게 되는 것이다.
4. 염불삼매를 행하면 일체번뇌와 장애가 모두 끊어진다.
5. 사람이 악하더라도 염불수행을 하면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
염불만 해서는 안된다. 즉 <나무아미타불>만 하는 것이 아니다. 각종 주문(呪文)이나 진언(眞言) 등을 일심으로 외우면 되는 것이다.
염불수행의 궁극 목적은 번뇌를 없애고 마음을 하나로 모아 열반에 들게 하는 데 있. 우리 이 신령스런 염불수행으로 안심입명(安心立命)하며, 정토극락에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