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천 재경 백전면 향우회 감사, 실용풍수학회 회장 © 함양신문 |
|
중국 공산당이 시진평의 권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새 지도부 구성을 마치고 장기집권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는 마침내 14억 중국의 황제가 된 것이다.
'사드 사건' 에서 보았듯이 중국이 재채기를 하면 우리나라는 독감을 앓는다. 강대국의 마음먹기에 따라 약소국의 운명이 갈려진다는 증거다. 중국을 움직이는 시진평의 거대한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시중쉰의 사망과 墓地移葬
2002년 5월 24일 중국공산당 개국원로
이자 시진평의 부친 시중쉰이 89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5월 30일 베이징에 있는 바바오산(八寶山) 혁명공묘지(革命公墓地)에서 장례식을 치뤘다. 그 후 정확히 3년 뒤인 2005년 5월 24일 아침 유족들이 쉬중쉰의 유골을 가지고 시안 역에 도착하자 미리와 있던 아들 시진평은 아버지 유골을 푸핑현 중심에서 약 2Km 떨어져 있는 타이오촌에 안장했다.
명당의 발복 때문일까? 시진평은 부친을 이곳에 이장한 후 주석이 되었다.
得長安 得天下
시안(長安)은 중국 중북부 산시성 황투고원에 있는데 산시성은 10만 135K2 의 면적에 인구 8800만 명이 산다.
장안은 시안(西安)의 옛 이름이자 황제(皇帝)의 도시다. 기원전 11세기부터 도시가 형성되었으며, 202년 경 전한의 수도였던 장안성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도시였으며, 당나라 때 실크로드의 출발지였다. 서위와 북주, 수와 당, 등 13개 왕조의 수도였고, 시안 북동쪽 13키로 거리에 진시황릉과 8000개의 실물크기의 병마용갱이 있으며, 양귀비가 목욕하던 우물 등 유적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예부터 "장안(관중)을 얻으면 천하를 얻는다(得長安 得天下)" 고 했다.
중국의 장서(藏書 : 풍수관련 고서) '감룡경' 은 시안 일대가 자미원(하늘나라 옥황상제가 다스리는 궁전)의 정기가 서려있는 신령스런 곳이라고 전한다.
또한 관중(關中)이란 장안을 지키는 요새의 중앙이란 뜻이다. 동쪽에는 함곡관(函谷關), 남쪽에는 요관무관(嶢關武關), 서쪽에는 대산관(大山關), 북쪽에 소관(蕭關)이 있는데 시안은 바로 이 4관 한 가운데 있고, 관의 산세가 험난하여 군사 1만이 적병 백만 명을 능히 당해낼 수 있다는 요새로서 초한지, 삼국지에도 등장한다.
특히 시안을 중심으로 웬첸하(溫泉河), 스촨하((石川河) 등 덟 개의 하천(8河)이 합치고, 감싸 흐르고 있어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8' 이라는 숫자와 풍수상 재물을 뜻하는 수(水)가 합쳐진 길지(吉地)라 할 만하다.
참고적으로 중국엔 이곳 시안 말고도 도읍지가 될 만한 곳으로 뤄양(洛陽), 난징(南京), 베이징(北京)등이 언급되지만 난징은 진시황이 '천자의 기운이 서린 곳' 이라고 하여 맥을 잘라버렸기에 도읍지로서 크게 성공하지 못하고 왕조가 망했을 때 가는 도읍지였다.
'자미원국' 의 대 길지 시안은 시진평 주석의 고향이다. 일본의 아베총리가 야마구치를 바탕으로 출세하였다면 시주석은 시안을 딛고 천하를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중신 묘역과 비보풍수(裨補風水)
시중쉰 묘역은 중국 풍수의 완벽한 재현을 보여주는 곳이다. 문화혁명 때는 풍수가 금기의 대상이었지만 1998년 인민일보는 풍수지리를 '신흥환경지리학' 으로 복권 시킨다고 공표했으며, 풍수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위한 선포식도 했다고 한다.
이곳에 다녀온 풍수학인들에 의하면 시중쉰의 묘역은 현룡재전(現龍在田) 즉, '밭에 용이 나타난 형국' 이라고 하는데, 묘는 평지에 자리하여 풍수적 관점에서 땅을 보기가 쉽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구름속의 기러기처럼, 화로 속의 온기처럼, 풀 속의 뱀처럼 은은한 내룡이 어슴푸레 평원위에 나타남을 알 수 있단다.
중국은 광활한 평지가 많고 특히 이곳 시안이 그러하다. 중국의 풍수는 넓은 평지에서 용맥을 찾고 혈을 정할 때(定穴) 용의 머리 부분을 찾고 물의 흐름을 따져 이마나 코에 해당하는 부분에 묘를 쓰지만 용 머리에 무덤을 썼다 하더라도 평지이기 때문에 그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으므로 묘역조경을 통해 주산, 입수, 청룡과 백호, 주작을 나타낸다.
또한 명당을 넓고 길게 조성하여 참배객들이 마치 제후가 천자를 배알하는 형태로 조성한 것은 고도의 비보풍수를 실행한 증거이다. 시중쉰의 유해와 석상이 안치된 뒤쪽의 평평한 터를 비보하기위해 나무를 겹겹이 심어 주산을 만들었다. 주산 뒤에는 용이 머리를 들이민 입수(入首)흔적을 뚜렸이 살려 멀리서 보면 균형이 잘 잡힌 실제의 산처럼 보인다고 한다.
중국에서 용은 천자를 상징한다. 숲에 식재된 나무도 중요하게 여기는데 소나무, 향나무, 측백나무가 주종을 이루며 묘역을 감쌌고, 조금 떨어진 곳에 모란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소나무는 현무(玄武)를, 향나무는 사당과 무덤가에 심는 신목(神木)을, 측백나무를 무덤가에 심는 것은 벌레가 침범하지 못하게 함이지만 불로장생의 신선나무(仙樹)를 상징한다고 하며, 모란은 뭇 꽃의 우두머리다. 이렇게 용의 머리를 완벽하게 재현함으로써 현룡재천(現龍在天)임을 확실하게 하여, 멀리서 보면 진시황릉과 그 분위기를 비슷하게 조성했다고 한다. 시진평은 량자허 토굴생활 7년을 극복하고 부친 묘의 발복에 더하여 14억 인구의 황제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