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 발암물질 살포된 천연기념물 상림숲…사람 편의가 생태 위에 놓인 ‘상림숲의 경고’“천연기념물 서식지 위협…원앙·수달·하늘다람쥐도 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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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어르신들이 맨발로 걷는 길에 발암 추정 물질이 뿌려졌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 그리고 수많은 천연기념물이 공존하는 경남 함양의 ‘상림숲(천연기념물 제154호)’이 발암 추정 물질인 나프탈렌의 대량 살포로 논란에 휩싸였다. 주민 신고로 뒤늦게 알려졌고, 함양군은 “뱀 퇴치용이었고 실수였다”며 일부 수거했지만, 전문가들과 지역 주민들은 “단순 실수가 아니라, 생태 인식 부재에서 비롯된 무책임한 행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천연기념물의 숲, ‘살아있는 자연유산’
상림숲은 1,100년 전 고려 시대에 조성된 국내 최초의 인공림으로,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지금까지 91속 116종의 식물이 보고되었으며, 이 숲에는 ▲천연기념물 제327호 원앙,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이자 천연기념물인 수달, ▲천연기념물 제328호 하늘다람쥐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런 상림숲에서 최근 주민들이 나프탈렌 냄새를 감지하면서 이상징후가 시작됐다. “바둑알처럼 생긴 무언가가 깔려 있었고, 냄새가 심해 눈이 따가울 정도였다”며 “처음엔 비료인 줄 알았지만 점점 강한 화학 냄새가 퍼지면서 민원이 쏟아졌다”는 게 지역 주민들의 증언이다.
사람도, 동물도, 안내 없이 독성 물질에 노출
문제가 된 나프탈렌은 미국 국립암연구소(NTP)에서 ‘발암 추정 물질’로 지정되어 있다. 장기간 노출 시 백내장과 호흡기 손상을 유발할 수 있으며, 방충제나 살충제 용도로 사용되나 실외에서는 사용이 극히 제한된다.
문제는 살포 경위뿐 아니라 그 이후의 대응이었다. 살포된 지역은 상림숲 산책로 인근, 맨발 걷기 체험 구간과 주민 휴식 공간 중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출입 금지 조치도, 독성 물질 경고 안내판도 없었다. 일부 어르신들은 “사탕인 줄 알고 만져봤다”는 증언까지 나온다.
함양군은 “일부 구역은 수거했고, 잘못된 점을 인지하고 있다”고 해명했지만, 나프탈렌을 숲 전체에 사전 조사 없이 광범위하게 살포한 것은 행정 책임을 벗어나기 어렵다.
“천연기념물 관리가 개인 화단 관리 수준인가”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단순 해프닝으로 봐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자연에 사람이 스며들어야지, 자연을 사람에게 맞추려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상림숲은 도시공원이 아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생태유산이자, 자연 복원력이 유지되어야 할 공간이다. 하지만 실제 상림숲의 관리 행태는 시민 편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맨발 걷기 코스 조성, ▲댄스 동아리의 고성방가 음악, ▲야간 조명 등은 숲 생태계에 위협이 되는 요소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뱀이나 벌레를 두려워해 독성 물질로 자연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근본적으로 ‘도시 공원화’된 생태 접근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한 주민은 “벌레와 뱀이 싫으면 실내 체육관에서 운동을 해야지, 천연기념물 숲을 해충 없는 공원처럼 만들려는 건 자연 훼손”이라고 지적했다.
행정의 편의성보다 생태 복원 우선돼야
상림숲은 단지 사람들이 산책하는 길이 아니다. 원앙, 수달, 하늘다람쥐가 함께 살아가는 생명 공동체의 공간이다. 그 속에 인위적으로 독성 물질을 뿌리고, 도시형 편의시설을 넣는다면 결국 천연기념물은 간판만 남고 숲은 텅 비게 된다.
이번 사건은 단지 ‘나프탈렌’ 때문만이 아니다.
이는 인간 중심적 관리 행정이 생태적 감수성 없이 작동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 경고다.
“자연을 위한 숲이어야 한다”,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이 서식하는 공간에 ‘발암 추정 물질’을 살포한 이번 사건은 단순 행정 실수로만 보긴 어렵다. 생태계와 인간 건강 모두를 고려한 행정 판단과 사전 조치,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상림숲은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도시 공원이 아니다. 이제는 사람 중심의 관리에서 벗어나, 자연 중심의 복원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천연기념물 숲을 보호하는 일은 단지 보호구역에 울타리를 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천연기념물도, 우리의 숲도, 더는 미래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상림숲은 단순한 숲이 아니다. 천 년 넘게 살아 숨 쉰 우리 생태의 유산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큰 감시와, 더 진지한 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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