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칠선계곡(함양군 마천면 추성마을), 그곳에 인적 드문 신비로운 마을 ‘두지터’가 있다. 그곳에 약초꾼 문상희씨가 산다. 두지터의 밤은 깊고 푸르다.
별들은 초롱초롱 하늘을 수놓고, 바람소리·물소리·벌레소리 하염없다. 두지터에서 바라본 칠선계곡은 신비롭기만 하다.
계곡은 폭포와 담소(潭沼)들이 20리나 이어진다. 현란한 물소리와 아름드리 빽빽한 원시림을 따라가면 지리영봉 천왕봉에 닿는다.
문상희씨는 굽이진 칠선계곡 산길을 매일 오르며 산야초를 캔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자연가(自然家)’라고 명명했다.
들어보면 참 산전수전 다 겪은 이력이다. 일찌감치 가출과 폭력에 물들었다. 군 제대 후에는 고향 진주에서 전자오락 도박장 ‘바다이야기’를 운영했다. ‘주먹’들과 형님, 아우로 지내다가 결국 칼침을 맞았고, 간신히 죽을 고비를 넘겼다. 문상희씨는 어느 날 차 만드는 길로 들어섰다. 어릴 때 지리산을 오가며 찻잎을 따고, 덖고, 비비는 법을 배운 덕분이다. 구례 화개골 쌍계사 뒤편에 ‘다우당(茶雨堂)’ 간판을 걸고 차와 다구(茶具)를 만들었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차주걱과 다포(차 찌꺼기를 거르는 체)는 그가 처음으로 개발했다. 제자들이 하나 둘씩 독립해 나가면서 경쟁을 하게 됐다. 중국차도 쏟아져 들어왔다. 환멸을 느끼고 홀연히 화개골을 떠났다. 3년 동안 지리산 동서남북, 골골샅샅을 헤매고 다니다가 ‘입산’한 곳이 두지터다.
자연이란 무엇인가?
노자는 ‘도법자연 道法自然’이라고 했다.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는 뜻이다. 동양에서 말하는 궁극적인 도는 결국 자연에 있다는 말이다. 자연의 이치를 알려면 자연에 몸을 담고 살아보아야 한다. 문상희 씨는 매일 아침 우거(寓居) 자연가에서 지리산의 서기를 받아드리며 신선처럼 살아가고 있다.
문상희씨는 약초꾼이면서 다인(茶人)이다.
봄이 오면 봄기운을 머금고 갓피어난, 여린 잎을 따, 차를 덖는다. 이름하여 초향(草香)이다. 문상희씨와 우거(寓居) 자연가에서 초향을 마셔본다.
지리산 석간수로 우려낸 은은한 차향이 산방 가득 번졌다. 깨끗한 산 공기와 싱그럽고 그윽한 차향에 정신이 명경처럼 맑았다. 필자는 초향에 취해 옛시인의 시를 암송해본다.
“‘청산불어화장소 靑山不語花長笑 수류무성조작가 水流無聲鳥嚼歌’”
‘청산은 아무 말이 없는데 꽃은 피어 웃고 있고, 계곡의 흐르는 물은 말을 하지 않는데 새는 노래를 부르고 있구나’
문상희 약초꾼(지킴이)으로부터 두지터의 유래를 전해 들었다.
“신라에 패한 가락국의 마지막 왕이 숨어서 신라군에 항전할 때 군량미를 감춰둔 곳이어서 ‘두지(뒤주의 경상도 사투리)터’로 불리게 됐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후에는 지리산 빨치산인 남부군 간이사령부가 있었지요. 토벌이 끝난 뒤 지리산 화전민을 집단 이주시키면서 지금의 마을이 됐습니다. 과거 두지터 사람들은 담배, 호두 농사와 함께 약초, 산나물, 토종벌로 생계를 꾸렸다고 해요. 제가 30여년전 이곳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마을에 쓰러져가는 빈집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두지터 담배 건조막을 고쳐 살고 있습니다.”
투지터는 경남 함양군 마천면 칠선계곡 초입, 해발 600m의 아늑한 분지다. 마을까지는 차가 들어가지 못한다. 옛날처럼 첩첩산중 오지마을은 아니지만 수줍은 산촌 정서와 풍경은 꽤 남아있다. 계곡은 폭포와 담소(潭沼)들이 20리나 이어진다. 현란한 물소리와 아름드리 빽빽한 원시림을 따라가면 지리영봉 천왕봉에 닿는다.
-문상희 약초인이 만든 초향(草香)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칠선계곡 두지터에서 자생하는 산야초와 나물을 따서 만든 차’입니다. 곰취, 취나물, 산마늘, 청옥, 참나물, 머위, 금낭화, 고사리, 구지뽕, 오가피, 벌나무, 당귀, 찔레, 산다래, 둥글레, 마가목, 으름덩굴, 오미자덩굴, 쑥, 머위, 어성초, 솔잎, 감잎, 참취, 칡 등의 새순만 100가지가 들어갑니다. 4월 20일 무렵부터 따기 시작해 단오 이전까지의 어린순(荀)으로 만듭니다. 순(荀)을 따서 뜨거운 가마솥에 일단 덖은 다음 손으로 비비고 말려서 발효를 억제시킨 순녹차 (荀綠茶)입니다.”
-약초도 케죠?
“매일 아침 옛날 심마니들이 다니던 길을 따라 산을 탑니다. 암에 효험이 있다는 상황버섯, 산중 진보(珍寶)인 천삼(땃두릅), 석청 같은 진귀한 약재를 찾아 길을 떠나지요.”
그는 말한다. “아무리 귀한 약재라도 연(緣)이 닿는 사람이 써야 효험이 있습니다. 약재로 돈 버는 욕심은 버린 지 오래입니다. 무소유 마음으로 약초를 케고 그 약초가 필요한 벗에게 약초를 선물하며 삽니다.”
예부터 지리산 북쪽, 칠선계곡 일대에서 자란 약초는 약성이 강한 것으로 유명하다. 땅의 음기(陰氣)가 세고 일교차와 연중 온도차가 크기 때문이란다. 허준의 스승인 유의태도 이곳에서 약초를 캤다고 전해진다.
-문상희 약초꾼(지킴이)의 단골식당은?
“마천 추성산장식당 입니다. 푸짐하고 주인장이 직접 채취한 많은 나물(산약초) 종류의 밑반찬에 몸에 좋은 한약재와 능이를 넣어 삶은 능이백숙은 보는 자체로도 몸이 건강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주인장의 인심과 손맛은 감동입니다.”
문상희 약초꾼(지킴이)은 두지터에 살면서, 허이불굴(虛而不屈)을 터득했다고 한다. 풀이하면 “비움으로 끝없는 생명을 얻는다.”
그는 사람들이 비우고, 버리고, 나누고, 줄이는 자연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훨씬 살 만할 세상이 될 것이라고 했다. 문상희 약초꾼은 두지터에서 허이불굴(虛而不屈)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점점 지리산을 닮아가는 문상희 약초꾼(지킴이)의 산농사는 올해도 대풍이다.
정상목mogsang11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