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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역사연구소장 박선호] 남명 조식의 사상과 황석산성 대첩!
 
함양신문 기사입력  2022/11/21 [10:00] ⓒ 함양신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황석역사연구소장 박선호  © 함양신문

 1597년 8월14일부터 18일까지 5일간 거창, 안음, 함양, 그리고 합천, 초계, 삼가, 산청 7개현 7천 여 명의 조선 백성들은 신식무기인 조총을 든 일본군을 맞아 활을 쏘고 돌을 던지며 처절하게 저항하며 사라져 간 황석산성은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곳으로 조상들의 명복을 빌며 기도를 하는 곳이다.

 

함양사람들의 신문이나 책자 등에 등장하는 것이 웅장한 황석산성이다.  그러나 BC 1800년 이라크의 남부 유프라테스 강물을 끌어 올려 만들었던 4000년 전 “바빌론의 공중정원”에서도 활을 쏘거나 총이나 대포를 쏘는 총안구가 있었는데 수 십 억을 투입하여 근래에 재축성한 황석산성에는 황당하게도 총안구가 없다. 마치 만리장성에서 총안구는 생략하고 바닥만을 옮겨 놓은 듯하다.  웅장하지만 전투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성, 활을 쏘려면 사수의 전신이 적에게 노출이 되어 총알받이가 되고 성벽은 높고 두터워 노인과 부녀자들이 쉽게 접근을 할 수도 없는 성이 황석산성이다. 히로시마(廣島) 성주 1백2십만5천석의 대 영주 모리데루모도의 75,300명을 궤멸시킨 곽준, 조종도, 유명개, 정언남, 류세홍부자, 정유문3형제, 박은호부자, 벽견산성에서 밀려 온 합천의 문익창, 죽음에서 살아나온 곽준의 큰사위 강준, 거창의 변흔, 최근에야 밝혀진 남원양씨 양홍주 등 수천의 조상님들을 전술과 전략도 모르는 바보, 천치로 만들어 버렸다. 

 

역사적인 고증도 사전연구도 전혀 없는 막쌓기 축성은 총안구가 없는 웅장한 괴물산성을 만들고 수십억 예산이 탕진된 비리의 산성이 되었다. “곽준장군이 문을 활짝 열고 나를 쏘아라!” 라고 외쳤던 누각을 복원하거나 황석산성대첩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축성을 다시 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지만 밝혀지는 진실이 얼마나 두려웠는지 감추어졌다. 황석산성은 역사적, 정신적 자산인데 그간의 방해공작과 비리는 묻어두고 <역사를 바로 세우자.>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조상의 빛바랜 흔적에 광을 내고 조상님의 음덕을 후손들이 누릴 수 있게 청년들의 번득이는 생각을 더할 수 있는 공론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성성자를 울리며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운 점이 없기를 바랐던 남명의사상과는 거리가 너무나 멀다. 2007년 <7만5천명 일본정규군의 궤멸을 연구>하려고 준비했던 1억원의 예산을 목적 외로 유용한 사람, 2018년 “백성의 전쟁 황석산성 대첩” 5백 여 권의 책을 불태우는 이유가 불분명한 괴상한 사건에 대한 징계는커녕 자체조사도 하지 않아 반성도 없는 불의가 일반화되는 전국최하위 구조적부패의 원인에 대한 지적을 했지만 묻혀 졌다. 현직이든 퇴직이든 국민세금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은 사인이 아니라 공인으로서 역사 앞에 자신을 반성하고 진실을 찾는 일에 앞장을 서야 할 것이다.

 

 황석선성 대첩은 책을 뚫고 패거리 당쟁이나 붕당을 뛰어 넘어 신분사회의 벽을 허물고 백성의 고통을 함께한 남명의 위대한 애국사상에 감응된 사람들이 뭉쳐서 폭발한 거대하고도 코를 빼앗긴 처절한 전쟁이다. 황석산성의 군무장 유명개는 남명조식의 수제자 합천의 정인홍에게 사사했고 4년 이상 안음사람들과 함께한 안음현감 곽준과 함양군수 조종도와 죽음을 끝까지 함께한 춘수당 정수민의 아버지 정언남은 남명의 제자 한강 정구에게서 사사했고 함양군수 조종도는 남명조식 누님의 사위로 남명에게서 직접 사사했다.

 

이와 같이 황석산성대첩의 주요지휘관들은 모두가 고고한 남명의 사상을 받은 사람들이다. 특히 1577년 거창좌수로 위촉된 유명개는 곳곳에 16개의 서당을 설치하고 20여 년간 순국할 때 까지 운영비를 사적으로 부담하면서 남명의 사상을 가르쳤고 엄격한 신분사회 속에서도 종들과도 같이 밥을 먹고 일도 같이 하고 이야기도 같이하는 유명개의 만인평등사상은 시대적으로 너무나 진보적이라 1578년 봄, 유명개에 대한 비판 청문회가 안음현 교북리 향교에서 열렸었다. 1592년 임진전쟁의 발발과 동시에 격문을 발하자, 10여일 만에 수백 명이 전투를 하겠다고 자진하여 위천으로 모여들었고 젊은 사람들 수 백 여명을 사비로 훈련을 지속하였으며 거창을 중심으로 전투를 하던 의병장김면에게 병력과 군량미를 지원하면서부터 6년간의 황석산성 전투준비가 이루어진다. 1593년3월11일 김천에서 김면장군이 병사함으로써 장수군의 최경회가 병력을 인수하였고 논개가 등장하는 6월의 진주성 전투가 발발한다.  

 

  잃어버린 역사? 황석산대첩의 진실을 찾는 일은 함양만이 아니라 민족전체의 역동성을 회복하며 부정과 부패가 없는 청정하고 만인이 행복한 나라, 60여명의 의병장을 배출한 남명조식이 꿈꾸던 사회를 향한 榮光의 門을 여는 위대한 일이다.  440여 년 전 교육입국을 생각한 황석산성의 군무장유명개의 백성교육의 효과를 부정하고 목숨을 걸고 백성의 자유와 평등, 고통을 함께한 남명의 위대한 사상을 망각한 조선인 <나는 쪼그라진 못난 사람이다,> 라는 식민사관과 남이 해주기를 기다리는 의타심으로는 榮光의 門에 접근을 할 수가 없다. 식민사관의 역사가 100여년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잃어버린 역사의 진실을 찾는 중차대한 일에 잔존하는 식민세력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일본총독부는 황암사당을 불태우고 ”안음사람들은 화를 나게 해서는 안 된다,“ 라고 하면서 물리적 고통에 더하여 1914년 3월1일 안의군을 파군하는 행정조치를 함으로써 황석산의 정기와 주인정신의 말살을 기도한 일본인들의 복수의 영향이 7개현을 넘어 전 국민에게 어떤 형태로 나타나고 어디까지 미쳤는지도 가늠하기도 어려운데, 심심산골 청개구리가 된 사람들은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일에 지원은커녕 눈을 감고 브레이크를 밟으며 꿀을 딸 벌통을 발로 차는 못난 짓거리를 아직도 하고 있다.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9월16일 이순신의 명량대첩을 가능케 하고 연이은 전투실패에 대한 스트레스로 풍신수길이 10월부터 헛소리를 하는 고황병으로 죽음으로 몰아 7년 임진전쟁을 종료시킨 결정적인 전투!  1597년 8월의 황석산성 대첩! 거대한 진실 앞에서 우리는 모두 내 모습이 얼마나 당당한지? 나의 내면, 양심의 나를 바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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