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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忠四佳徐公諱居正先祖誕辰600週年追慕奉行(2)
(대구서씨  문충사가공파의 파조이신 서거정선조께서  2021년 01월 태어나신지 600년이 되는 해.)
 
함양신문 기사입력  2021/01/11 [10:14] ⓒ 함양신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서일석 수동초교48회 함양중26회 재경함양읍향우회장 산악회장     ©함양신문

 서거정선조 생전에 시를 1만 여수를 지은 문장가요, 세종부터 성종까지 6대에 걸친 임금을 모시며 관직에 계셨다. 서거정선조께서 영면(永眠)할 때까지 관직에 있으며 10.000여 편 시를 많이 쓴 문장가다. 서거정선조의 세대를 뛰어넘은 충의와 탁월한 업무 능력으로 조선조 신흥 왕조의 기틀을 세우는 데 기여하였고, 뛰어난 문장가로 국내뿐만 아니라 명나라와 베트남까지 이름을 날린 그의 인생역정(歷程)은 우리 역사에 다시 한번 주목해 볼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 역사에 이렇게 시대를 뛰어넘어 충의(忠義)를 지키고 뛰어난 문장(文章)으로 나라를 통치한 인물이 또 있을까? 사가(서거정선조)분은 관인문학(官人文學)의 대표적 문인학자이며 조선 신흥왕조의 기틀을 세운 명신(名臣)이다.

 

그의 뛰어난 식견과 행정 능력은 세종부터 성종까지 6대에 걸쳐 왕의 신임을 받으며국가의 주요 관직을 두루 거치면서 많은 공을 세웠다. 조선 최초로 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홍문관과 예문관의 대제학을 겸함)을 23년간 역임하면서 조선조 초기의 문병(文柄)을 장악하고, 특히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과 지성균박사를 겸임하면서 문형(文衡)을 맡아 조선문화의 부흥을 이끌었다. 그뿐만 아니라 당대 최고 문장가로 명나라 학자들로부터 해동(海東)의 기재(奇才)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러한 그의 문장과 글씨는 당대 국가의 수많은 편찬 사업에 참여하는 등 많은 기여를 했다. 그 자신도 뛰어난 문학 저술을 남겨 문풍(文風)을 일으켰다. 국가의 요구에 의해 『경국대전(經國大典)』, 『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동국통감 (東國通鑑)』,『오행총괄(五行摠括)』,『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동문선(東文選)』 등 편찬에 참여했으며, 왕명으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을 언해(諺解)하여 조선왕조의 문화적 품격을 높였다. 본인 저술서로는 『역대연표(歷代年表)』, 『동인시화 (東人詩話)』, 『필원잡기(筆苑雜記)』,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이 있으며, 『사가집(四佳集)』 등이 있다

 

서거정선조는 대구가 본관, 대구가 낳은 조선조의 대학자, 형조판서, 최참찬, 대제학을 역임. 조선시대 초기 세종때 진시. 양시에 합격 대제학을 지내시고 4번 현관에 합격대 사헌을 2번, 과거 시험관을 23번 지냈다.

 

세종에서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까지 6대까지 모셨고 세자분들 스승이다. 집현전박사, 경 연사경이 되고 동국여지승람, 경국대전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우리나라 한문학 독자성을 내세웠다. 광진구 광나루에 시비가 있고, 또한 대구십영을 통해 대구와 팔공산을 애정을 가졌다.

 

경기도 양평 용문산아래 용문사찰 안 입구에 서거정 시비가 서있으며,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 공원 안에 대구서씨 집성촌이 있었는데 88올림픽 때 이주하여 지금은 서울 송파구 방이동 주민센터 옆에 대구 서씨 공덕비 정각이 세워져 있다.

 

달성군 서거정의 졸기

달성군(達城君) 서거정(徐居正)이 졸(卒)하였다. 철조(輟朝)·조제(弔祭)·예장(禮葬)을 관례대로 하였다. 서거정의 자(字)는 강중(剛中)이며, 경상도 대구(大丘) 사람인데, 문충공(文忠公) 권근(權近)의 외손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나이 여섯 살에 비로소 글을 읽고 글귀를 지었는데, 사람들이 신동(神童)이라고 하였다.

 

정통(正統:명나라 영종의 연호)무오년(1438 세종 20년) 에 생원시(生員試)·진사시(進士試) 두 시험에 합격하고, 갑자년(1444 세종 26년) 에 문과(文科) 3등으로 급제하여 사재 직장(司宰直長)에 제수되었다가 얼마 안 되어 뽑혀서 집현전 박사(集賢殿博士)에 보임(補任)되고 부수찬(副修撰)과 지제교(知製敎) 겸 세자 우정자(世子右正字)에 올랐으며, 여러 번 옮겨서 부교리(副校理)에 이르렀다.

 

을해년(1455 세조 원년) 에 집현전 응교(集賢殿應敎)와 지제교(知製敎) 겸 예문관 응교(藝文館應敎)와 세자 우필선(世子右弼善)에 제수되었다가, 병자년(1456 세조 2년) 에 성균관 사예(成均館司藝)로 옮겼다. 덕종(悳宗)이 동궁(東宮)에 있을 때 세조(世祖)가 좌우에게 이르기를,

 

"보필(輔弼)하는 사람은 마땅히 학문이 순정(醇正)하고 재행(才行)이 함께 넉넉한 자를 골라서 삼아야 할 것이다."

 

하고는, 드디어 서거정을 좌필선(左弼善)으로 삼았다.서거정이 일찍이 조맹부(趙孟頫)의 적벽부(赤壁賦) 글자를 모아서 칠언 절구(七言絶句) 16수(首)를 지었는데, 매우 청려(淸麗)하여, 세조가 보고는 감탄하기를, "보통 사람이 아니다."하였다.

 

정축년(1457세조3년)에 중시(重試)에 장원하여 특별히 통정 대부(通政大夫) 사간원 우사간(司諫院右司諫) 지제교(知製敎)에 제수되었다. 이때에 세조가 사방을 순수(巡狩)하고자 하므로, 서거정이 논간(論諫)하기를 격절(激切)히 하니, 물론(物論)이 아름답게 여겼다. 세조가 여러 신하와 더불어 후원에서 활쏘기를 하니, 서거정이 간하기를, "신하와 더불어 짝지어 활을 쏘면 사체(事體)를 잃을까 두렵습니다. 또 정전(正殿)이 있어 신하들을 접견할 수 있는데, 하필이면 활쏘는 것으로 인하여 착한 말을 듣고 하정(下情)을 통하도록 해야 하겠습니까?"

 

"서거정의 말이 지나치기는 하나, 옛말에 ‘임금이 밝으면 신하가 곧다.’고 하였으니, 이제 전하께서 성명(聖明)하시기 때문에 서거정이 그 말을 한 것입니다. 신은 그윽이 하례드립니다."하였으므로, 세조(世祖)가 기꺼이 받아들였다. 무인년(1458 세조 4년)에 정시(廷試)에서 우등하여 통정 대부(通政大夫) 공조 참의(工曹參議)로 옮겼다. 하루는 세조가 조용히 서거정에게 이르기를,"《녹명서(祿命書)》도 유자(儒者)가 궁리(窮理)하는 일이니, 경이 가령(假令)을 지어서올리라."하니, 이때에 《오행총괄(五行總括)》을 지었다. 경진년(1458 세조 4년) 에 이조 참의(吏曹參議)로 옮기고 사은사(師恩使)로 부경(赴京:명(明)나라 북경에 감)하여 통주관(通州館)에서 안남국(安南國) 사신 양곡(梁鵠)을 만났는데, 그는 제과 장원(制科壯元) 출신이었다. 서거정이 근체시(近體詩) 한 율(律)로 먼저 지어 주자 양곡이 화답하였는데, 서거정이 곧 연달아 10편(篇)을 지어 수응(酬應)하므로, 양곡이 탄복하기를, "참으로 천하의 기재(奇才)다."하였고, 중국의 문인들로 최부를 본 자는 필히 서거정의 안부를 물었다. 이에 이르러 졸하니, 나이가 69세이다. 시호(諡號)는 문충(文忠)인데, 널리 듣고 많이 본 것을 문(文)이라 하고, 임금을 섬기는 데에 절의를 다한 것을 충(忠)이라 한다. 적처(嫡妻)에는 아들이 없고 서자(庶子) 서복경(徐福慶)이 있다.

 

서거정은 온량 간정(溫良簡正:온화하고 무던하며 간소하고 바름) 하고 모든 글을 널리 보았고 겸하여 풍수(風水)와 성명(星命)의 학설에도 통하였으며, 석씨(釋氏:석가)의 글을 좋아하지 아니하였다. 문장(文章)을 함에 있어서는 고인(古人)의 과구(科臼:규범)에 빠지지 아니하고 스스로 일가(一家)를 이루어서,《사가집(四佳集)》30권이 세상에 행한다.《동국통감(東國通鑑)》·《여지승람(輿地勝覽)》·《역대연표(歷代年表)》·《동인시화(東人詩話)》·《태평한화(太平閑話)》·《필원잡기(筆苑雜記)》·《동인시문(東人詩文)》은 모두 그가 찬집(撰集)한 것이다.

 

정자를 중원(中園)에 짓고는 못을 파고 연(蓮)을 심어서 ‘정정정(亭亭亭)’이라고 이름하고, 좌우에 도서(圖書)를 쌓아 놓고 담박(淡泊)한 생활을 하였다. 서거정은 한때 사문(斯文)의 종장(宗匠)이 되었고, 문장을 함에 있어시(詩)를 더욱 잘하여 저술에 뜻을 독실히하여 늙을 때까지 게으르지 아니하였다.

  © 함양신문

宋誾上人還龍門寺

 回首龍門揷壁天

 招堤一路細於泫

 携館又入烟羅去

 四月山深屬杜鵑

 

송은상인환용문사

머리를 돌리니

용문산이 하늘에 꽃인듯

거문고 줄처럼 좀은 절집으로 가는 길

지팡이 끌고

무성한 숲으로 들어가니

초여름 깊은 산에

두견새 소리만 이어지네   

 

  © 함양신문

 

廣津寸墅晩眺

乾坤納納一江湖

千里渾成水墨圖

白鳥去邊水明滅

靑千盡處山有無

古垣松菊餘三經

夢里桑麻老一區

步履看看將落日

雨餘花氣潤如酥

 

광진촌서만조

천지간의  좋은풍경  강호성에  들어오는데

천리나 넓은 안계(眼界)  수묵화를 펼쳐 놓았구나

갈매기 날아가는데 수면이 밝았다 어두었다

푸른하늘 저끝엔 산이 보이다 말다하네

고원의 소나무 국화는 옛날선비 서성대던 길이요

몽리의 뽕나무 삼밭은 오랜 옛날의 한 마을이라네

한걸음 두걸음 보고 또 보노라니 벌써 해 서산에 지려는데

비 지난뒤  꽃 기운이 젖처럼 윤기 흐르누나

 

  © 함양신문

閑 中

百髮紅塵閱世間世間

何樂得如閑吟閑酌仍

閑步閑坐閑眠閑愛山

                                                 

한 중

홍진에 묻힌 백발이 되도록

세상을 살아 가운데 어떤

즐거움이 한가로움만 같으리라 한가              

로이 읊조리고 술마시며 또 한가로이            

거닐고 한가로이 앉고 한가로이 잠자며

한가로이 산을 사랑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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