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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충현 출향인의 고향 그리기 ] 청암공원(靑巖公園) 앞에서
권충현 재외함양군향우회 연합회 회장
 
함양신문 기사입력  2020/07/27 [09:58] ⓒ 함양신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권충현 재외함양군향우회 연합회 회장    © 함양신문

  남계서원 세계 인류 문화유산 등재 1주년 기념 축전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청암공원을 지나왔다. 청암공원은 함양과 지곡 사이 대로변에 있다. 울창한 소나무와 정자를 배경으로 잔디가 멋진 공원이다. 공원에는 예닐곱 명의 남정네들이 푸른 잔디밭 위에서 즐거운 함성을 지르며 시끌벅적하게 어울려 놀고 있었다. 차를 세우고 그 신나는 놀이판을 들여다보았다. 옷차림새로 보아 아마도 인근 마을 주민들이 점심을 먹고는 오후 쉴 참에 이곳에 모여 즐기고 있는 듯했다. 하도 신나게 어울리는지라 구경을 하다가 넌지시 물어보았다. 이게 무슨 놀이냐고. 그라운드 골프라고 했다. 이 공원 유래를 아느냐고 물었다. 한 사람이 ‘서울 사는 어떤 사람이 만들어 주었다는 데 잘 모른다.’고 했다.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지곡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함양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온 후 상경하여 조경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그 친구가 젊은 시절에 고향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공원을 조성하고 희사한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 회장, 오늘 우연히 청암공원에 들렸는데 마을 사람들이 자네가 만든 공원에서 골프를 즐기며 신나게 놀고 있구나. 돈을 벌면 이렇게 보람있게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자네가 존경스럽게 느껴져 전화했어. 정말 보기 좋구나. 정말 장한 일 했다”고 치하했다. 그러자 친구가 그랬다. “그래? 고마워. 하지만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은 이제 별로 없을 걸세.”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두고 온 고향이 항상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돈을 벌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하게 되면 고향을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어 한다. 어떤 이는 고향 인재 육성을 위해 장학금을 내어놓기도 하고 어떤 이는 고향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편의시설을 마련해 드리기도 한다. 그들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보은의 감정으로 그냥 그렇게 한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할 뿐이다. 가슴 속에 늘 고향이 있으니까. 하지만 받는 우리는 당연한 것으로 무심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자기 돈, 자기 시간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 소중한 것을 기꺼이 내어놓은 사람들에게는 고마움을 느끼고 감사를 표하는 게 마땅하다.

 

  공자님은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군자[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라고 했지만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남을 위해 헌신하고 기여했을 때 남들이 알아주면 기분 좋고 그런 좋은 일을 또 하고 싶어 하며 남들이 몰라주면 서운하게 생각하고 다음에는 그런 일을 하는 것에 돈이나 에너지를 쓰고 싶어 하지 않게 된다. 감사할 일은 감사하는 마음을, 감사하는 마음은 감사할 일을 확대재생산(擴大再生産)하는 것이 사람 살아가는 세상의 이치이니 우리 함양을 더 좋은 사회로 만들려면 이러한 선순환(善循環) 고리를 확대시켜 나가야 한다.

 

  청암공원은 25년 전인 1995년에 한 사람의 출향인이 거금을 희사하고 지곡초등학교 42회 동기들이 힘을 합하여 조성한 공원이다. 당시 공사비가 일억 천칠백삼십사만 원이나 들었으니 지금 가치로 따지면 십억 원 이상의 돈을 들여 만들고 고향 사람들에게 희사한 셈이다. 그러나 지금 그곳엔 그런 사실을 적은 표지석 하나 없다. “지금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걸세.”라는 김 회장의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청암공원엔 그 후에 군에서 예산을 들여 정자를 하나 지었다. 정자 이름은 생뚱맞게도 어유정(魚遊亭)이다. 물고기 어(魚)자에 놀 유(遊)자이니 글자 그대로 보면 물고기가 노는 정자다. 저수지도 없는 공원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다. 이름대로라면 지금 청암공원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이 물고기다. ‘물고기 어(魚)’자 대신에 ‘고기 잡을 어(漁)’자를 썼다면 멀리 남계천에서 고기를 잡아다가 끓여 먹고 노는 정자라서 어유정(漁遊亭)이라 했다고 견강부회(牽强附會)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그냥 물고기 어(魚)자를 써서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군에서 행정을 하는 사람들은 군 예산을 들여서 정자를 지었을지라도 그곳이 가지는 의미와 역사성을 고려하여 이름을 지었어야 했다. 해방 이후 지곡면민들은 매년 8월 15일이면 광복절을 경축하고 면민 친선을 도모하기 위한 체육대회를 개최해 왔는데 그날은 지곡초등학교 출신 출향인과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즐기는 지곡면민 모두의 잔칫날이었다. 그 행사가 70년대 초부터 어떤 연유에서인지 중단되고 말았다. 1972년 이십 대 초반이었던 지곡초등학교 42회 동기들은 끊어진 체육대회를 아쉬워하며 십시일반 쌀을 모아 청암기(靑巖旗)를 만들고 경비를 염출하여 청암기 쟁탈 축구대회라는 것을 개최했다. 체육과 대학생이었던 정민환군과 최환식군이 주도했다. 청암(靑巖)이란 덕암천 주변에서 나고 자란 젊은 지곡인, 청년 지곡인을 상징하는 이름이었다. 이 대회는 지곡초등학교 42회 주관으로 이후 십여 년간 지속되었으며 후에 지곡면 체육회가 주관하는 면민 체육대회로 계승 발전되었고 42회 동기생 중 한 명으로 조경사업을 통해 거부가 된 김병탁 회장이 청암이란 이름으로 공원을 조성해 고향에 기부하는 계기가 되었다. 김 회장은 함양까지 걸어서 통학하던 중학교 시절 하교 귀갓길에 여기까지만 오면 다 왔다는 안도감으로 편히 쉬어가던 추억어린 곳이라 이곳에 공원을 조성하여 면민들의 쉼터로 기부한다고 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말이 있다. 출향인들은 타향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언제나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살아간다. 출향인들의 애향심과 고향 발전을 위한 기부가 제대로 평가되고 다른 사람들을 감발(感發)시켜 확대 재생산(擴大再生産)됨으로써 고향 발전을 위한 선순환(善循環) 고리가 만들어지기를 소망한다. 어유정(魚遊亭)의 이름이 청암정(靑巖亭)으로 바뀌고 청암정 편액 옆에 공원을 조성하여 희사한 출향인의 애향심과 청년 지곡인들의 고향 사랑이 청암정기(靑巖亭記)로 작성되어 걸리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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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숭산 2020/07/27 [20:16] 수정 | 삭제
  • 권박사! 반세기 전의 아득한 시절인데 너무나 생생한 이야기로 엮어 가슴이 뭉클하네 내친김에 청암기도 잘 작성하여 주시게. 늘 건승하시길 도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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