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기고 >
[박선호 백성의전쟁 황석산성대첩] 항소장을 접으며
 
함양신문 기사입력  2020/05/25 [09:57] ⓒ 함양신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황석역사연구소장 박선호               © 함양신문

항소장을 써야할 시간에 필자는 꿈을 꾸는 황석산의 미래를 쓰고 있다.   과거의 일로 미래를 그리지 못한다면 그냥 시간이 아까울 따름이다. 한 번에 끝날 안의면의 <백성의전쟁 황석산성대첩 책 480권 폐기처분사건>이 피고는 “2017.1.1일부터 2018.7.30. 까지 근무를 했으나 책에 대해서는 본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다고 했다.  1차 정보공개가 6하 원칙에 입각한 것이 아니어서 기각이 되었다.

 

그러나 2차 정보공개에서 경찰내사결과 ”피고의 지시에 의해 2017.2.6.일 책이 폐기 처분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결국은 거짓 주장이 판사의 예지를 둔화시켰고 정의를 망가뜨렸다. 필자의 느낌은 경찰의 척사현정(斥邪顯正)의 날카로움은 없고 사람에 따라서 잣대가 달라지는 흙탕물에 함양군이 젖어 있구나, 라는 의심이 든다.

 

 

  변호사님들과의 상담결과 본 책의 폐기사건은, 안의면에서 책을 처리한다고 필자에게 알려만 줬어도 되는 것인데도 알리지 않았고, 피고가 지시를 한다고 하여 의심도 없이 버린 직원도, 고물상도, 일방적으로 처리한 것에 문제가 있다, 라고 하며 근본적인 문제해결에 대한 조사나 직원들의 징계에 대한 책임은 함양군에 있다, 라고 한다.  그러나 ”일반인이 기관단체와의 법적인 다툼을 해서는 안 된다.“ 라는 함양신문 김광수회장님의 말씀을 따라 함양군과의 문제는 일찌감치 접었고 전 함양군교육장 오일창선생님의 말씀을 따라서 항소도 접는다.  흙탕물에서 헤엄을 치며 기어코 이겨서 이익을 챙기면 뭣이 그리 기쁘겠는가?

 

  지금부터 안의면의 『백성의전쟁 황석산성대첩 480권 보상대책위원회』는  안의면의 꿈과 미래를 향한 발전대책위원회로 그 이름과 역할을 바꾸기를 권한다.   하루빨리 75,300명을 궤멸시킨 황석산성 대첩비를 세우고 일본군들에게 코를 빼앗기고 죽은 214,752개의 코무덤을 코베기 전투장 황석산성 산하에 만들자! 약 2만 9천여 명이 코를 베이고 죽은 명나라군 에비(殪鼻)들의 무덤도 만들고 조선군의 코를 벨 수가 없었던 황석산의 일본군이 동료들의 코를 마구잡이로 베어 스스로 궤멸되는 주요한 이유가 된 40,799 개의 일본군출신 에비들의 무덤도 만들자! 그것이 농산물 수천 여 톤을 수출하는 것보다 더 많은 큰 수익이 나올 것이다.  늦으면 늦을수록 손해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지난 20년간 필자는 운영하던 사무실도 지속할 수가 없었고 황석산성이 위치한 안의면에 황석역사연구소 간판도 달수가 없었다. 몇 년 전 이창규 면장은 안의면에 황석역사연구소 사무실을 만든다고 했으나 결국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그 마음만은 지금도 고맙다.  밤잠을 설치며 만들어진 새로운 사실(史實), 박스를 뜯지도 아니한 새 책 24박스, 500kg을 폐기 처분하신 분들이여! 책의 내용을 몰랐다고? 의도적이 아니라고 해도 누가 그대로 믿을 수가 있을까? 함양법원 조정관 여러분! 필자보고 “퉁?” 치라고 하지 말라, 필자가 돈이 많아서 황석산성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버는 것보다 황석산의 역사적 가치가 더 크고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을 폐기 처분한 무모한 행위에 대한 반성과 정당한 가치를 평가할 수 있도록 그들을 안내하고 그들이 흔쾌히 보상을 할 때, 가족을 지키다 코를 베이고 옥쇄한 칠천 영혼들의 용서와 축복을 받는 길이 될 것이다.

 

  아직도 식민사관과 스스로 못난 패배의식에 빠져서 어떻게 노인과 부녀자, 농민, 사냥꾼들이 일본정규군을 궤멸시켰느냐고 의심을 하시는가?  당시의 주요무기가 조선은 활이요 일본군은 조총이다. 인류의 최종병기 활은 조총보다 성능면에서 월등하다. 갑옷을 뚫고 적을 즉사시킬 수 있는 유효사거리는 50m로 비슷하지만 비상거리는 조총은 200m고 활은 250m로 더 멀리 날아간다. 또한 발사속도에서 조총은 분당 한발이지만 활은 3초면 지속적인 발사가 가능하다. 따라서 발사속도에서 약 20배나 더 빨리 화살을 날릴 수가 있다.  또한 일본인들이 황석산성을 정찰한 결과 “산은 높고 성은 견고하여 넘을 수도 없었고 뚫을 수도 없었다.” 라고 실토를 했듯이 황석산성의 요새적인 지형의 특성은 전 세계 어느 나라의 성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우전으로 올라가든 황산으로 올라가든 남문성벽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고 평지가 아닌 산악에서 7만 명이 올라가도 한꺼번에 사격은 불가능하고 유효사거리 내에 이르면 기동공간이 좁아져서 2000명도 한꺼번에 들어 갈 수가 없다. 그래서 일본군은 2000명이 분당 2천발을 쏘지만, 활은 100명이면 2천발을 쏘고 300명이면 6천발을 쏠 수기 있어 조총과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한 화력을 유지할 수 있다.

 

마치 고구려 24대 양원왕이 성을 쌓고 25대 평원왕이 고구려의 수도(首都)로 선언한 중국서안의 장안성이 즉사유효사거리 50m를 고려하여 성을 쌓아 적들이 정문에 들어서는 순간 즉사를 시키는 것과 같은 그런 곳이 남문이다.  또한 위에서 아래로 하향사격을 하는 활이, 위로 올려다보면서 상향사격 하는 조총보다는 정확도가 훨씬 높았을 것이다.  정신력 면에서도 전투 중에 동료들의 코를 베어 돈을 벌겠다는 정신 나간 일본군보다 전투단위가 가족들인 조선군은 자신이 물러선다면 가족이 죽는다. 지금 서있는 그 위치에서 한발자국도 뒤로 물러설 수가 없어 황석산성 전투는 기적 같은 영혼의 전투가 되었다.  추석 이튿날인 16일 밤부터 휴식도, 철수도 없이 밤을 지새우는 일본군의 인해전술에 우전마을의 개울은 일본군들의 코에서 쏟아지는 붉은 피로 넘쳤다. 

 

 1597년 8월 일본군이 궤멸된 황석산성 대첩이 얼마나 억울했으면 3백년이 지난 1914년 3월 1일 안의군을 파군을 하고 잃어버린 역사로 만들었을까?  함양군민 여러분!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노약자, 부녀자 7천명이 일본정규군 7만5천3백명을 물리친 기적의 황석산성 대첩을 기억하시라! 당신의 가슴속에서 엄청난 힘이 솟아 날 것이다. 황석산성 대첩이 없었으면 이순신의 명량대첩도 있을 수 없고 조선이라는 나라도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역사연구란 과거의 진실을 밝혀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며 설계하는 끊임없는 노력입니다.

 

 
2020. 5.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함양신문
 
  • 도배방지 이미지

[박선호 백성의전쟁 황석산성대첩] 항소장을 접으며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일류
가장 많이 읽은 기사
지리산천왕축제, 강력한 희망메시지를 전하다 / 함양신문
[데스크 칼럼] 군의장 3선,‘초유의 상황’을 맞이한 함양군의회 / 함양신문
함양군, 2021년 국비확보 총력 태세 / 함양신문
[사설] 민선 7기, ‘서춘수 군정’ 2주년의 의미 / 함양신문
대봉산 짚라인 공사현장 근로자 추락사 발생 / 함양신문
[최병훈 기쁜소식함양교회 담임목사] 산악인 엄홍길 / 함양신문
함양군의회, 제8대 후반기 원구성 / 함양신문
[정상목 기자가 만난 사람] 어머니 손맛을 재현하는 당귀쌈 삼겹살 명가 ‘미성손맛’ 김혜정 대표 / 함양신문
함양군 자원봉사협의회 회장 이·취임식 개최 / 함양신문
서춘수 군수, 취임 2년...함양군 미래 100년을 그리다. / 함양신문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