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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 소재우] 스승의 날, 스승 존경은 옛말
 
함양신문 기사입력  2020/05/18 [09:26] ⓒ 함양신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소재우 전,교장 본지논설위원  ©함양신문

  올해로 57회 째 스승의 날을 맞이한다. 그래서 관심 있게 언론과 사회상을 살펴보니 스승의 날이 있는지 관심도 없다. 특히 코로나 때문에 학교가 휴업이라 대면을 삼가니 더욱 그렇고 또 촌지문제로 스승의 날이 퇴색되고 있어 한심하다. 선생은 이날 학부모를 피하고 학부모는 촌지 아닌 꽃을 선물하려해도 오해가 두려워 선생님을 만나지 못한다. 스승의 날이 사제관계를 더 멀어지게 하는 것인가?

 
 교육계에서는 여러 가지 기념행사를 통해 스승존경의 오랜 역사적 풍습을 승화 시켜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오늘의 학교의 교육사조는 냉소 그 자체다. 스승임을 포기하고 노동자로 전락한 교직자의 일부와 이런 교사에 동조해 배움은 뒤로하고 흥미를 추구하는 자유분방한 학생들만 있는 학교에는 존경스런 스승은 없고 선생만 있으며 순수 제자는 없고 학생만 있는 집단이 되었으니 참된 인간 육성을 위한 학교는 사라져 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도 이날을 제정해 사제 간의 인연에 큰 힘을 실어준 것에는 바람직하다. 그래서 스승의 날 유래를 살펴본다.

 
 55년 전 충남 강경에서 학생들이 병든 선생님을 돌보다 스승 존경의 마음을 기리고자 스승의 날을 제정해 해마다 기념해 왔다. 그러다 우여 곡절 끝에 1965년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제정해 국가적인 기념일이 되었다. 그러나 일부 극성스러운 학부모의 촌지문제가 일어나자 이 행사마저 퇴색하여 지금은 교문에서 출근하는 선생님께 꽃 한 송이 달아주 는 게 전부다.

 
 스승 존중 기념일은 세계 60여 개국에서 하고 있는데 대개 선진국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G20개국 안에 드니 ‘스승의 날’을 기념하고 또 노래를 만들어 이 날을 기리고 있다. 그 노래에 스승존경의 뜻이 잘 담겨있으니 한번 음미하면서 옛 스승을 기려보자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가네. /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이 노랫말처럼 스승을 마음으로 존경하고 배움의 길잡이로 따르고자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어버이처럼 기리고자 해야 한다. 또 진정으로 스승을 존경한다면 이 노래 3절을 음이 해 보면서 ‘한번 스승은 영원히 스승이다’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 바다 보다 깊은 스승의 사랑 / 갚을 길은 오직하나 살아생전에 / 가르치신 그 교훈 마음에 새겨 / 나라위해 겨레위해 일하오리이다.”

 
 스승을 존경하고 그 배움에 감사한다면 제자로서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스승과 제자의 인연이야기를 소개 합니다.

 조선시대 이식(李植) 선생은 몸이 허약하여 용주사에 가서 공부를 하며 유념 스님에게 많은 가르침을 배웠다. 그러다가 유념스님이 연로하여 돌아가시면서 유언을 남겼다. “아무리 초라한 사람이라도 없이 여기지 말라.”

 
 이 말씀을 들은 후 슬픔에 젖어 며칠을 보낸 다음 마음을 가다듬어 공부를 하던 중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렸다.

 
“적지 않은 나이에 애쓰는 바는 많으나 깨닫는 바가 적은 모양이니 참 딱하구나.” 하는 소리가 들려 문틈으로 보니 절에서 밥을 짓고 땔나무를 해주는 불목하니 절 머슴 이였다.

 
 그 순간 유념 스님의 유언에 ‘초라한 사람을 없이 여기지 말라’는 말이 머리에 떠올라 나이 작지만 그를 청하여 스승으로 삼고 공부를 하였다. 몇 해를 배우고 나자 스승은 이제 세상에 나가 과거를 보라며 내년 정월에 만날 것을 약속 했다. 그 후 이식 선생은 과거에 급제하여 정월에 스승을 만나 집에 갈 것을 권했지만 스승은 사양하면서 “앞으로 3년 뒤 병자년에 난리가 날 것이니 가족을 데리고 영천으로 가라, 우리는 묘향산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니라.” 하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리고 3년 뒤 정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예언이 맞아 임금에게 이 말을 전하자 왕은 스승을 찾아올 것을 명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자 왕에게 아무 날 아무 시에 묘향산으로 보내줄 것을 청했다. 약속한 날 묘향산에 도착하였다. 이때 이식 선생은 이조 판서였으므로 고을 원이 친히 나와 가마에 모시고 갔다. 시간이 되어도 스승이 나타나지 않자 스님이 타계한 줄로 알고 있었다. 사또 거처에 당도한 뒤 가마꾼이 만나기를 청한다 해서 보니 가마를 메고 온 사람이 불목하니 스승이라는 것을 뒤 늦게 알고 넙죽 엎드려 절했다.

 
 조선시대는 전쟁이 나면 승려들도 군역에 나가 일하였는데 스승인 스님도 군역에 나가 나이 많다하여 가마를 메었다. 그러자 스승 스님은 말했다.

 
 “내가 그대의 가마를 메고 가는 것도 모두 전생의 인연이니 이상하게 생각 말라” 그리고 사흘 동안 우주의 이치와 인연생멸(因緣生滅) 대해 설법하고 이제는 마지막이라고 하면서 떠나 버리셨다. 사제 간의 연은 끝이 없어 내세에 다시 만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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