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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 정일상] 춘풍추상(春風秋霜)
 
함양신문 기사입력  2020/01/20 [10:41] ⓒ 함양신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청암 정일상 시인.수필가 본지 논설위원  함양신문

 <채근담(菜根譚)>에 나오는 춘풍추상(春風秋霜)이라는 글이 있다. 이 글은 명대(明代)의 홍자성이 지었는데, 이 사람은 1600년대 전후 중국 명나라 신종대의 사람으로, 생몰(生沒)연대가 확실하지 않고 경력이나 인물됨에 대해서도 알려 진바가 거의 없다. 다만 스스로 ‘환초도인(還初道人)’이라 불렀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을 뿐이며 그 글을 남길 당시엔 다만 이름만 알려진 사람이다. 

 

 <채근담>에 나오는 이 <춘풍추상>이라는 말의 ‘춘풍(春風)’은 봄바람처럼 따뜻하고 부드럽게 한다는 말이고, ‘추상(秋霜)’은 가을 서릿발처럼 매섭고 엄하게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의 원문을 보면「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으로 ‘남을 대할 때에는 봄바람(春風)처럼 부드럽고 너그럽게 하며, 자기 자신을 지키기는 가을 서리(秋霜)처럼 엄하게 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처럼 남의 과오는 마땅히 용서해야 하지만 자신의 과오는 용서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생각이 너그럽고 두터운 사람은 봄바람이 만물을 따뜻하게 기르는 것과 같고, 모든 생령(生靈)이 봄바람을 만나면 살아나며, 생각이 각박하고 냉혹한 사람은 찬 서리에 모든 것을 얼게 함과 같아서 만물이 이를 만나면 곧 죽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어떤 문제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 내면에 존재하는 무형의 잣대를 사용하며, 선악(善惡). 미추(美醜), 시비(是非) 등의 판단이 그렇게 내려진다. 자(尺)는 어떤 대상의 길이를 잴 때 쓰는 도구이며, 당연히 그 대상의 크기나 모양이나 외부환경 등과 무관하게 눈금의 간격이 늘 일정해야 하는 것이다.

 

 가령 자의 눈금이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한다면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고, 이는 내면의 잣대라고 해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내면의 잣대를 한 결 같이 유지하고 적용하기란 실제로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경향이 우리 내면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잘못을 해도 내가 한 잘못은 용서가 되고, 남의 잘못은 그가 몰지각한 인간이기 때문에 용서가 안 된다. 내가 침묵하면 깊이 생각하느라 그런 것이고, 남이 침묵하면 생각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또 내가 화내는 것은 주관이 분명해서이고, 남이 화내는 건 성격이 더러워서라고 생각하기 싶다. 우리는 늘 이런 식으로 내면의 잣대를 스스로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늘였다 줄였다 하기 쉬운 법이다.

 

 그래서 자신과 이해관계가 있는 사안을 얼마나 공평무사한 잣대로 판단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성숙함의 정도를 알 수 있다. 옛날 <묵자(墨子)>는 ‘친사 편’에서 “군자는 스스로 어려운 일을 떠맡고 남에게는 쉬운 일을 하게 하지만, 보통 사람은 어려운 일을 남에게 떠넘긴다.”고 했다. 이렇듯 동양의 전통은 공평무사함을 넘어서 오히려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한 경지에까지 나아가는 것을 군자의 덕목으로 꼽아 온 것이다.

 

 조선시대 왕은 암행어사를 임명할 때 ‘봉서, 사목, 마패, 유척’을 하사했다고 한다. 이 가운데 유척은 놋쇠로 만든 자(尺)이다. 암행어사는 각 고을의 도량형(度量衡)과 형구(刑具) 규격을 검사하기 위해 유척 2개를 지녔었다. 탐관(貪官)이 백성에게 엉터리 도량형을 써서 세금을 많이 거둬 나라에는 정해진 양만 바치고 나머지를 챙기는 부정부패를 단속한 것이었으며, 이처럼 길이, 부피, 무게 기준을 의미하는 도량형은 국가를 지탱하는 근간이었다.

 

 대인관계에도 이중 잣대는 갈등을 야기(惹起)하며,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이분법적으로 재기 때문이다. SNS가 발달 된 현대사회는 익명이 판을 치고 독선과 오만이 팽배한 사회가 되었다. 지극히 주관적인 가치관으로 거의 무장돼 있다. 주관은 모든 상황을 자신의 입장에서 재단하게 마련이며, 타인에게는 가혹하지만 자신은 의도가 훌륭하다면 쉽게 자신을 용서하는 이중 잣대를 들이대곤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남에게 충고하는 일이고,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 자신을 바로 보는 일이라 한다. 우리 인간이란 생각을 바꿔 보자. 모든 일은 <네 덕>이며 <내 탓>으로 돌리는 것이며, 세상의 수많은 일과 관계들이 복잡다단하게 얽혀있다 하더라도 이 집착과 고통의 근원을 차분히 따라가다 보면 만나는 건 딱 두 가지 뿐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내가 너보다 조금 더 잘났다는 아상(我相)과 내가 너보다 조금 더 옳다는 분별 심(分別心 )이라 여긴다.

 

 우린 아상과 분별 심을 일단 저 멀리 던져 놔버리고 그냥 “제 탓 입니다.”라고 한번 해보면 어떨까 싶다. 그래도 저 사람의 잘못이 더 큰데, 내가 저 사람보다 못한 게 뭐가 있다고 하는 등등의 반발하는 생각이 마음 안에서 치고 오를 것이다. 그래도 상황이 어떻게 변해 가는가 한번 지켜보시지요. 내가 옳다는 상황을 설명하려 말고, 내가 이렇게 잘못했다고 얘기하는 것이며, 그렇게 한마디 하고 그냥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시면 되는 것이다.

 

 무척 어려운 문제이다. 내 잘났다는 아상과 내가 더 옳다는 분별심이 우리의 마음 안에 오랜 시간동안 자리 잡은 탓이다. 그래도 이를 계속해서 반복해 <제 탓>이라 하면, 상대방의 잔소리도 점차 줄어들고 내 마음안의 분별심도 서서히 잦아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그렇게 따뜻한 시선으로 변해있을 것이며, 세상은 맑고 밝고 훈훈한 곳이며, 나날이 좋은 날이 펼쳐질 것이라 믿어진다. 이것이 바로 수행이고 마음공부인 것이다.

 

 춘풍추상! 이제 남의 결함을 들추어내려 애쓰지 말고, 자신의 결함을 속속들이 찾아내야 하며, 대인관계에서 우리가 당장에 이겼다할지라도 교만하고 방심하면 다음에는 질 것이며, 당장에는 졌다할지라도 겸손하며 분발하면 다음에는 반드시 이기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남에게는 봄바람 같이 내게는 서릿발 같이 마음을 닦아 가면 어떨 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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