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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노태]계절이 바뀌는 길목에서
이노태 함양군청 민원봉사과장
 
함양신문 기사입력  2019/12/02 [10:31] ⓒ 함양신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이노태 함양군청 민원봉사과장  함양신문

보리를 심으며(2018.11.12. 월)

 

상림관리소 입구에는 대형 화분 8개가 줄지어 있다. 겨우내 비워둘 화분에 보리를 심었다. 시장에서 보리씨앗을 구입해서 고르게 뿌리고 비닐 멀칭을 했는데, 며칠 사이로 파릇 움이 틀 것이고 비닐을 벗겨내면 겨우내 눈보라와 추위를 이겨내는 보리의 의연함을 보게 될 것이다. 예전에는 월동하는 대표적 농작물이 보리, 마늘 등이었는데 언젠가부터 보리농사가 사라졌다. 처음에는 쌀 수확량이 늘어나면서 쌀을 선호하는 식단에 따라 소비량이 줄면서 생산량 역시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보리는 겨우내 대지의 냉기를 가득 담고 자라기 때문에 성질이 차가운 음식으로 분류된다. 그래서 여름철 더운 체온을 식혀주는 음식으로 그만한 건강식품이 없다고 했다.

 

보리가 가난의 상징적인 농작물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대부분의 소작농들은 벼를 심어 수확한 70~80%를 소작료로 주고 나면, 다음해 가을 벼를 수확할 때 까지는 식구들이 먹을 양식으로는 턱도 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모작으로 가을에 보리를 파종했다. 하지만 겨울을 나면서 바닥을 드러낸 쌀 항아리는 식구들을 춘궁기 배고픔의 시절로 몰아넣었다.

 

우리의 부모대가 겪었던 “보리고개”는 오로지 식량해결이 최우선의 과제였던 시절, 서민들에게는 참으로 고통의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어김없이 봄은 돌아왔지만 이제 이삭이 피기 시작한 저 보리가 영글어 식량이 될 때 까지 기다릴 수 없는 절박함, 어김없이 아이들은 태어났고 배고픔을 보채는 소리를 못들은 체해야 했던 우리들의 부모님이었다. 이제는 건강식품으로, 관상용으로 역할이 바뀌면서 보리를 내년 봄에 는 상림에서 볼 수 있다. 주린 배 안고 보리 고개를 견디어온 사람들, 휘파람 불며 보리밭 사잇길을 걸어온 사람들, 보리인지 벼인지 구분이 필요치 않은 사람들이 한 세대에 살고 있다.

 

국화와 보리(2019.11.22. 금)

 

지난 10월 중순경 함양군청 입구 딱정벌레 무늬 화분에 노란색과 보라색 국화를 심었다. 덕분에 군청마당은 한 달이 넘도록 꽃향기 가득했고, 벌과 나비들이 찾아와, 직원들은 물론 민원인들도 보는 즐거움과 향기로움에 눈길이 자주 머물렀다. 입동(11월8일)이 지나면서 무서리가 몇 차례 내리더니. 노란 국화는 꽃송이 주변이 붉은색으로 바뀌고, 보라색 국화도 탈색이 된 듯 생기가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꿋꿋한 자세를 쉽게 흩트리지 않고 오랫동안 의연한 모습을 지키고 있다. 찬 서리에도 쉽게 시들지 않는 고고한 국화의 자태를 보고, 우리 선조들은 절개를 굽히지 않아야할 선비들의 덕목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국화가 지고나면 보리를 심을 계획인데, 너무 늦으면 보리싹 틔우기가 힘들 것 같다. 국화가 좀 더 오래 버티기를 바라면서 한편으로는 국화가 빨리 지기를 기다린다. 인간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안다면 국화가 얼마나 배신감을 느낄까,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그런 인간들의 변하지 않는 이기심쯤은 국화나 보리도 이미 간파하고 있을지 모른다.

 

며칠간 기온이 많이 떨어지면서 올 들어 가장 춥다는 기상예보도 있고 지리산에는 일찌감치 첫눈 소식이 들려왔다. 오늘은 11월22일, 절기상 스무 번째에 해당하는 소설(小雪)이다. 드디어 국화가 보리를 위해 미련 없이 터를 비워주었다. 여러해살이 국화는 군청내 화단에 옮겨 심어 내년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한다. 미리 물에 담가 싹을 쉽게 틔울 수 있도록 준비를 한 보리씨앗을 정성스럽게 심고, 화분전체를 비닐로 잘 씌워 보온이 되도록 했다. 아마도 12월 중에는 보란 듯이 싹을 틔워 올릴 것이다. 가을 내내 향기로웠던 국화를 대신해서 이제는 파란 보리싹이 추운 겨울을 나는 것을 우리는 매일 볼 수 있겠다.

 

혼신을 다해 가을을 향기롭게 하다가 때가 되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비워주는 국화, 기꺼이 온몸을 던지는데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보리, 이제 우리는 연약해 보이지만 한겨울 추위를 이겨내는 보리와 함께 다가오는 봄을 기다리게 되리라, 희망을 발견하리라.

 더불어 공직자로서 가져야할 의연한 자세를 다시 한 번 가다듬게 되리라.

 

※. 청사관리를 하시면서 화분을 가꾸고, 보리를 심어주신 우유정 여사님의 배려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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