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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 소재우 함양 野史] 함양 읍성의 객사는 왜 없나? (2)
 
함양신문 기사입력  2019/10/14 [10:05] ⓒ 함양신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송암 소재우 본지노설위원 함양향토사위원   함양신문

  * 읍성(邑城)과 객사(客舍)의 개요
 함양읍성의 객사는 전경을 찍은 사진이 없어 형체를 잘 모른다. 이를 알기위해서는 실체를 본 어르신들의 증언과 다른 고을 읍성과 비교해야 이해가 빠를 것 같아 한곳 읍성 사진을 올렸다. 함양객사의 전면사진이 없어 이해가 잘 안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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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지방관아인 읍성에는 기본적으로 동헌과 객사를 비롯한 육방(六房)과 필요한 청사가 있었다. 그런데 누각과 정자는 필요에 따라 있는 곳도 있다.

함양읍성에도 객사가 있었고 그 옆에 누각인 학사루가 있었다. 동헌과 내아 향청(鄕廳) 숙위(宿衛)가 있었다. 4대문에는 문루가 있었다.(옛지도) 누각(樓閣)은 대개 동헌과 객사 사이에 있어 군수와 객사 의 방문객 양쪽인사가 모여 소통한 곳이라 본다.객사의 의미는 고려 때는 객사정, 조선 때는 객사나 객관(客館)이라 했다, 왕명을 받고 오는 관리가 오면 투숙하면서 업무를 보는 곳이다.

또 여행하는 관리나 지방의 권문세족들이 찾아와 군수와 교류하기도 한다. 그리고 객사 중심부 정당(正堂)은 좌우익(左右翼) 건물보다 1~2m 높게 지으며 그곳에는 왕의 전패(殿牌)와 왕의 위패(位牌)를 모시었다. 그래서 읍성의 중심에 위치한다. 사찰의 대웅전 과 같다. 그리고 지방관리 향직(鄕職) 6품인 좌윤(佐尹)의 객사정(客舍正)을 두어 관리케 했다. 공복(公服) 옷의 색은 옥색이다.

그리고 신년 초나, 매월 초하루 보름에는 군수와 아전들이 왕의 전패(殿牌) 앞에서 충성의 의미로 북향 배례를 올렸다. 구조는 대개 3측 기초 주춧돌에 정당(正堂) 3간, 좌우익에 익실(翼室)이 있는데 각각 4~5간 측면 2간 건축물이다. 객사 는 울이 있고 전면에 중문, 좌우 옆에 외문(外門) 측면에 객사 관리 행랑(行廊)처가 있다.

객사 중앙 정당 바닥은 돌이나 나무이고 양쪽 익실(翼室)은 온돌방이었다. 학사루는 외문을 나서 뒤쪽에 있어 객사정이 관리 했다. 대표적 객관은 경주 동경관, 나주 반효관, 통영객사가 유명한데 중앙관리가 자주 찾는 곳이라 크고 유명하다. <동아백과, 객사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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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양객사 내력 
 함양객사의 내력은 읍성과 학사루의 내력과 거의 같다. 읍성의 구조상 동헌 객사, 숙위 아전 방사(房舍)등이 있다. 객사는 정당(正堂)에 왕의 전패를 모시니 꼭 있어야 해서 함양읍성에도 객사가 있었다. 조선 숙종 때 학사루를 중수 할 때 객사는 그 이전에 이미 있었으며 같이 중수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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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0년 소학교 설치 령에 의해 학교를 지을 때 전국적으로 객사와 학사루를 교실로 개조해 사용하였다. 함양소학교는 객사교실과 신관교실 사이의 30m를 골마루 복도로 만들어서 다녔다. 1945년 내가 1학년 때 학교에 가면 큰 객사 건물이 무서웠다. 6학년 6.25전쟁 때 본관은 폭격으로 무너졌는데 객사와 학사루는 무사해 공비 토벌 온 군인들이 주둔 했었다.

 
 내가 함양초등학교에 근무할 때(1970~)도 객사를 교실로 사용하였고 왼쪽에 과학실이 있어 과학담당자로서 관리를 했고 중앙 정당 쪽은 교무실, 우측 한간은 교장실과 교실로 사용 했다. 학사루는 객사 끝에서 뒤로 대각선으로 30m 지점에 있었다.

 
 이때 전국적으로 학교에 목조 건물이 많아 불이 자주 나자 교실을 콘크리트로 바꾸는 중이었다. 큰 학교인 함양초등학교에도 교실개축이 배당 되어 개축하게 되었다. 교장과 몇 사람은 객사를 뜯고 그 자리에 지어야 전면이 보기 좋다고 하고, 학부형과 교사들은 운동장 쪽 폭격 맞은 나무 본관을 철거하고 짓자고 하며 논쟁하였다. 그러나 객사를 옮기려 해도 장소가 없고 비용이 문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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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청에서 매각해 대구로 뜯겨 갔다.

 
 그때 대들보 상량문에 350년 전에 지은 것이라고 들었다. 그때 벽을 헐고 기와를 걷고 하자 주민들이 교육청에 가서 항의까지 했다. 새로 2층으로 객사 위치에 교실이 완공되자 잠잠해졌다. 함화루와 같이 상림으로라도 옮겼으면 했는데 독지가가 없어 아쉬웠다. 그 다음해 광복절에 학교북쪽 목조 4교실이 대낮에 방화로 불이 나서 다 탔다. 나도 점심 먹다가 뛰어 왔지만 전소했다. 그 뒤 군청 뒤 느티나무 속이 불타고 서편교실에 불이 나고 했다 그러자 객사를 뜯어서 용왕이 화가 나서 재앙을 줬단다. 운동자리에 연못이 있었다 한다. 내용을 모르는 젊은이들은 객사가 불에 타서 없어 졌다고 탐방기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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