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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 소재우] ♚ 옛 비단길을 새 비단길로 가다, 끝 ♚ 돈황과 불교 성지 막고굴
 
함양신문 기사입력  2019/09/23 [10:16] ⓒ 함양신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송암 소재우  본지논설위원   함양신문

  
 *  불교성지 돈황(敦煌)

  호텔에서 조식후 짐을 챙겨 일찍 나섰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일정이 빡빡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막고굴을 보러 가는 길이기에 마음가짐을 달리 했다. 옛 승려들이 왜 이곳에서 머물다갔는지 느껴 보리라.

  

 중국서북의 실크로드는 고대 중국과 서역을 이어준 교역로로 1~2세기에 이길 따라 불교가 유입되었다. 사막의 오아시스요 교통의 중심지인 돈황은 366년부터 서하가 멸망 할 때 까지 대상(隊商) 따라 들어온 서역의 불교가 사람들의 왕래만큼 점점 발전하여 여러 왕국에서 건너온 승려들이 머문 주요도시가 되었다.

  
 막고굴은 명사산 북쪽 벼랑에 남북으로 1,6km에 이르는 불교문화의 보물 창고이다. 서역과 중국을 이어주는 이곳에 처음 굴을 판 사람은 승려 낙준(樂僔)이다. 낙준이 366년 수행공간을 찾던 어느 날 석양 무렵에 명사산 벼랑에 반짝이는 금빛을 보고 상서로운 예감이 들어 이곳에 굴을 뚫었다고 한다. 이후 각 민족의 승려와 조각가 화가 석공 목공들이 드나들면서 울력을 다해 하나 둘 동굴이 늘어났으며 그 시대 민초들의 불심과 호흡과 몸짓이 그대로 재현 되어 있다.


그들은 366년부터 천불동(千佛洞)으로 불리는 수많은 석굴사원을 계속 건설했다.      그러자 돈황은 중요한 불교 중심지이자 순례지(巡禮地)로 발전하게 되었다. 심지어 토번 점령군조차도 사원을 지었다. 지역사회에 큰 역할을 했던 많은 사원이 있었으며, 세습통치자들은 사원을 적극 후원 했다. 많은 승려들 대부분은 한족(漢族)이 아닌 이민족이었다. 승려들은 이곳에 오면 여러 민족으로부터 많은 불교 정보를 접할 수 있고 깨달음의 길이 있으리라 보고 스스로 굴을 만들어 수행을 위해 거주하기도 했다.


 20세기 초에 발견된 석굴사원 가운데 하나는 1015년경에 지어진 것으로 AD5~11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무려 20,000점 가량의 그림과 필사본들이 소장 되어 있었다.    여기에는 불교뿐 아니라 도교경전들과 중세 중국사회의 역사를 탐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는 평신도들이 직접 쓴 기록도 상당히 많이 포함 되어 있었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도 여기서 나왔다. 요즈음은 관광지로 불자들의 순례지로 발전하여 편의시설이 발전하고 있다.


 * 천불동 막고굴(莫高窟) 순례


 낮에는 사막이라 덮지만 아침은 특유의 모래냄새와 냉기가 돈다. 옛날 실크로드 명사산 끝의 깎아지른 절벽에 조각한 거대한 노천대불(露天大佛)과 수백 개의 굴에 안치된 아름다운 채색으로 단장한 생명의 핏줄 같은 불상들을 보기 위해 막고굴로 출발했다. 오아시스 내를 따라 길 양쪽의 은사시 숲을 끼고 한참 걸어가니 암벽이 보이고 그 절벽에 굴들이  많이 보인다. 주변을 살피고 가이드의 해설을 들었다.


 이곳의 석굴은 상하 2~5층으로 옆으로 이어졌고 그 길이가 1,600여m에 달한다. 현존하는 석굴은 492개며 내부에는 25,000여개의 불상이 있고 45,000㎡에 달하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조각과 그림 건축이 삼위일체를 이룬 막고굴은 실용성과 예술성을 결합한 입체 예술이다. 크고 작은 불교석굴에는 관리를 위해 번호가 붙어 있다. 불교 경전이 대량 감춰져 있던 돈황 15, 16호 석굴은 ‘장경동(藏經洞)’이라고 부르는데 신라 고승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곳이다. 장경동에 섰을 때와 249호굴의 고구려 수렵 화를 볼 때 반갑고 뿌듯했다.


 수나라 때 조성 했다는 332호 사각형 석굴은 3개의 벽면에 각각 3존불이 있고 뒷면에는 와불이 안치 되어 있는데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배치다.


 관람객에게 개방하는 석굴은 20여개다. 벽화를 보호하기 위해 잠가 두었다. 언제나 개방된 것은 96번굴로 막고굴의 대표 얼굴이다 높이35,5m나 되는 대불이다.

 
 1900년 방대한 고문서가 발굴된 17번 굴은 항상 개방이다. 이굴의 구조는 16번 굴 오른 쪽 벽을 뚫어 조성한 굴인데 10세기 송나라 때 토번, 몽고 등 외세의 침입에 대비해 중요 문서들을 숨겨 두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5만 여점의 문서는 한자, 티벳어, 인도 범어 등으로 기술한 것으로 역사적 가치가 상당하다. 그중 4만 여점이 영국의 스타인, 프랑스의 펠리오 등에 헐값에 팔려 해외로 반출 되었다. 굴이 너무 많고 해서 각자 관람키로 하고 가이드로 부터 막고굴 정보 자료를 얻었다. 아래층에 와서 자료를 보고 대불을 보니 중국 3대 대불을 임을 실감했고 3대 대불을 다 본 셈이다. 정사장과 막고굴의 내력과 감상을 이야기 하면서 일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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