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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 정일상] 마음의 빚
청암 정일상 시인.수필가 본지 논설위원
 
함양신문 기사입력  2019/07/29 [13:17] ⓒ 함양신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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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빚을 지고 산다. 빚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빚이라고 하면 금전적인 빚만 빚이 아니다. 이 지구상의 인간이 느끼는 현상인 천지우로(天地雨露)의 덕이 모두 빚이고, 스승님의 가르침을 세상에 펴는 것도 빚이고, 나라에 충성하는 것도 빚이며,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도 빚이다. 또 더불어 의지 하며 살아가는 동포(同胞)의 은혜도 빚이고, 세상의 질서를 바로 잡아주는 법률(法律)의 은혜도 빚이라 할 수 있다.

 이 세상에 가득 찬 은혜를 입고 살아가는 우리는 그 빚을 갚을 의무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빚을 지고 살아가는 것일까 생각해 본다. 그 수많은 빚을 몇 개의 은혜로 집약을 한다면 아무래도 천지의 은혜(天地恩) 부모의 은혜(父母恩) 동포의 은혜(同胞恩) 법률의 은혜(法律恩)에 벗어 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네 가지 큰 은혜를 우리는사은(四恩)이라 부른다.

 이와 같이 따져보면 빚이 없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오히려 빚 없는 사람은 아무 쓸모없는 존재일 것이다. 사람이 빚이 없기를 바라면 안 된다. 어차피 우리는 타고 난 그날부터 빚을 지고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빚진 몸을 걱정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 빚을 갚을까를 걱정을 해야 하는 것이다.

 박수(朴銖:1864~1918)중당유고(中堂遺稿)1, <여김취오(與金聚五)>에 빚의 종류에 대한 글이 나온다. 그의 말에 따르면 빚은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상환을 전제로 남에게 빌린 물질적인 빚이고, 하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서로 신세지고 도움 받으며 사는 마음의 빚이라 한다.

 그러니까 박수가 말하는 빚은 마음의 빚인 동시에 자신의 책무일 것이다. 이 뜻은 사람이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야 하는 근원적인 빚을 지고 산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박수는 얽히고설킨 인간관계 속에서 빚이 없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런 쓸모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지금 물질에 관한 빚도 가계부채의 팽창으로 국가 경제가 흔들리는 위기에 처해 있다. 자산이 되어줄 줄 알았던 부동산이 불과 20년도 안 되어 깊은 침체의 늪에 빠질 위험에 처해 있다.

 왜냐하면 집을 사면서 은행에서 과도한 빚을 졌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사회 전반적으로는 불건전한 가계 상태가 양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 가계부채가 1,500조 원을 넘었다고 한다. 따라서 서민의 삶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 역시 점점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 이 마음의 빚을 갚는 방법이 없는 것일까? 달마(達磨) 대사가 지은 <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에는 그 마음의 빚을 갚는 방법이 나온다. “만일 수행자가 수행을 하다가 어렵고 괴로운 일을 당하면 이는 내가 전생에 알게 모르게 지은 악업의 과보를 받는 것이다이렇게 생각하여 빚을 갚으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이렇게 생각하라고 갈파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억울한 일이 누군들 없겠는가? 이런 일은 수행의 문에 들어온 사람이라 해서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달마대사의 말처럼 생각한다면 아무리 억울하고 괴로운 일을 당했다 하더라도 내가 짓고 내가 받는다고 생각되니 덜 억울하고 괴로움도 덜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반면에 이유 없이 괴로움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조그만 괴로움이라도 견디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모든 괴로움을 이렇게 달게 받는다면 문제는 없는데,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의문도 들 것이다. ‘세상사는 모든 일이 다 빚을 갚는 일인가?’ 그렇다. 세상에 빚만 지고 사는 사람도 없고, 보시만 하며 사는 사람도 없다.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이 빚을 갚는 것일 수도 있고 베푸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빚을 지지만 또 다른 곳에서는 은혜를 베풀며 살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 오늘은 빚을 지지만 내일은 갚으며 사는 것이 인생살이일 것이다. 그런데 중생의 마음이라 내가 하는 것이 빚을 갚는 것인가, 아니면 공덕을 쌓는 보시를 한 것인가하는 궁금증이 들 때도 있을 것이다.

 “빚을 갚는 것이냐 아니면 공덕을 쌓는 것이냐하는 것은 근본적인 입장에서 보면 별 의미가 없다. 갚는 것이건 쌓는 것이건 모두가 다 인과(因果)의 법칙에 따르기에 받는 것도 베푸는 것도 내가 받고 내가 베푸는 것이며, 갚는 것이라 생각하건 공덕을 쌓는 보시행이라 생각하건 인과의 법에 따라서 자동적으로 갚는 것이면 갚아지는 것일 것이고, 보시한 것이면 공덕이 쌓일 것이기 때문이다. 다 갚으면 더 갚을 일이 없을 것이다.

 그 빚을 갚는 방법은 두 가지 길이 있다고 한다. 그 첫 길은 과보를 달게 받는 것입니다.

이를 감수불보(甘受不報)라고 한다. 내가 고생하며 베풀어주고도 별로 고맙다는 인사도 받지 못하고, 때로는 오히려 부족하다는 질책을 받는다면 이는 빚을 갚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비유하자면 돈을 빌려준 사람은 돈을 받아가면서 고맙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인 것과 같은 것이다.

 둘째, 무상보시(無相普施)를 하는 것으로써, 조그마한 공덕과 보시를 베풀어도 베푼 것 이상의 고맙다는 인사를 받는다면 이는 내가 공덕을 쌓은 것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현재의 인과가 그렇듯이 전생을 포함한 삼세를 통해 일어나는 인과에 있어서도 똑 같은 결과를 보여준다.

 그리고 만일 빚을 갚는 경우라 생각될 때 빚을 받아 가는 사람이 너무 당당하다고 해서 억울하다거나 기분 나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옛날 빚은 갚으면서 새로운 업()을 일으키는 것이 되어 미래의 괴로움의 원인을 심게 되기 때문이다.어차피 갚는 빚이라면 달게 갚고 다시 빌리지 않으면 다시 과보를 받을 일이 없다. 그리고 이왕 복을 지으려면 상() 없이 베푸는 것이어야 하며, 그렇게 하면 업()은 사라지고 공덕만 쌓이는 것이다.

 우주의 진리는 원래 생멸(生滅)없이 길이 길이 돌고 도는 것이며, 가는 것이 곧 오는 것이 되고 오는 것이 곧 가는 것이 되며, 주는 사람이 곧 받는 사람이 되고 받는 사람이 곧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일러 만고(萬古)에 변함없는 상도(常道)라 한다. 어찌 마음의 빚을 달게 갚지 않을 수 있을 까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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